경순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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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년]]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 [[견훤]] 군에게 [[경애왕]]이 붙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자 그가 신라 56대 왕위에 올랐다. 그는 본래 왕위 계승 위치에 있지 않았으나, [[견훤]]이 [[경애왕]]에게 자살을 강요하여 갑작스럽게 죽게 되어 왕위에 올랐다. 즉위 배경은 미상이며 왕위에 오를 당시 [[경애왕]]의 자녀들이 있었는지, [[화백회의]] 추대를 받아서 했는지에 대한 진위 여부는 알려진 바가 없다.
 
[[파일:King Kyungsoon of Silla 2.jpg|섬네일|right|150px|경순왕 영정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74호)]]
그는 즉위 초 아버지 [[대아찬]] [[김효종 (신라)|김효종]]을 신흥왕(神興王)에, 할아버지 각간(角干) 김인경을 의흥왕(懿興王)에 각각 추존하였다. 재위 시 국력이 쇠퇴하고 특히 여러 차례에 걸친 [[후백제]]의 침공과 약탈로 국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따라서 그의 정책은 난폭한 [[견훤]]보다 오히려 [[왕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ref name="nate01">[http://koreandb.nate.com/history/people/detail?sn=128 경순왕:네이트 한국학]{{깨진 링크|url=http://koreandb.nate.com/history/people/detail?sn=128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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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름 = 金傅
|왕조 = [[고려]]
|그림 = King Kyungsoon of Silla 2.jpg
[[파일:King|그림설명 Kyungsoon= of Silla 2.jpg|섬네일|right|150px|경순왕 영정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74호)]]
|작위 = 관광순화 위국공신 상주국 정승 상보 낙랑왕<br>(觀光順化 衛國功臣 上柱國 政丞 尙父 樂浪王)
|가문 = [[경주시|경주 유화궁]](慶州 柳花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