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칼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Choboty (토론 | 기여)
잔글 영어판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살해된 3세기 군주
잔글 윤문
35번째 줄:
[[213년]] 북부 지역을 순찰하며 게르마니아 방벽을 완성했고 [[215년]] 10만 명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파르티아]] 원정을 떠났으나 [[볼로가세스 5세]]가 자신의 요구 사항을 들어줌으로써 명분을 잃고 중단되었다. 이후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던 중 소요 사태를 진압하던 중 주민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216년]] 볼로가세스가 [[아르타바누스]]에게 살해되자 다시 군사를 이끌고 파르티아군을 밀어붙였다. 이때 카라칼라가 파르티아 공주에게 청혼을 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원로원까지 반카라칼라 진영으로 돌변했다. 결국 [[217년]] 4월 이에 카라칼라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의심을 품은 병사들이병사들은 [[마크리누스]]에게 호소해이를 호소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217년]] 4월 카라칼라는 자신을 경호하던 백인대장의 형을 죽인 것이 원인이 되어,<ref>《서울대 선정 인문 고전 50선-마키아벨리 군주론》윤원근 글, 조진옥 그림/주니어김영사 p.86</ref> [[메소포타미아]] [[카레]] 근처의 신전에서 암살당했다.
 
== 업적 ==
로마 제국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다. 로마 제국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준 정책은 세수 충원을 원활하게 했을 뿐 아니라, 그전부터 제국에 인력과 세수에 많은 기여를 하던 속주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심어주어 제국 일체화에 공헌하였다.
로마 제국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준 정책은 세수 충원을 원할하게 했을 뿐 아니라, 그전부터 제국에 인력과 세수에 많은 기여를 하던 속주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심어주어 제국 일체화에 공헌하였다.
 
== 읽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