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랜드 공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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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1978년]]에 시랜드 공국에 알렉산드르 아헨바흐라는 독일인과 한 독일 사업가와 네덜란드 사업가가 찾아왔다. 돈이 많은 그들은 여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였고, 시랜드 섬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 위하여 당시 시랜드의 공작이었던 [[패디 로이 베이츠|로이 1세]]가 잠시 요새를 떠난 사이 그의 아들인 마이클 베이츠를 포로로 잡고 무단으로 시랜드 안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점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로이 1세와 당시 시랜드 공국의 주민으로 등록되어 있던 20명의 사람들이 총출동하여 그들을 진압하고, 그 사업가들을 포로로 삼아 [[독일]] 정부와 포로협상을 벌였다. 결국 사업가는 떠나고 시랜드는 독립을 지키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 중 네덜란드 사업가는 시랜드의 총리였다. 시랜드 공국에서는 사건을 '외자(外資)의 난'이라고 부르고 있고 이 사건은 시랜드 공국의 유일한 독립 운동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파일:Sealandafterfire2.JPG|300px|섬네일|2006년 화재가 난지 2달 후의 시랜드 공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