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훈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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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형 [[아신왕]]이 죽자 형을 대신하여 [[섭정]]하며 [[일본]]에 볼모로 간 조카([[전지왕|왕태자 부여 영]])를 기다렸다. 그러나 왕이 되고 싶었던 막내동생 [[부여설례]](일명 [[부여설례|부여접례]])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ref>[http://weekly.hankooki.com/lpage/nation/200511/wk2005112116553737070.htm 주간한국 : [한·일 관계사 새로보기&#93; 칠지도<!-- 봇이 붙인 제목 -->]</ref><ref>{{웹 인용 |url=http://www.subkorea.com/education/history/hist/baek/18.htm |제목=한국역사-백제왕 18대 전지왕(전支王)<!-- 봇이 붙인 제목 --> |확인날짜=2008-07-0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2142907/http://www.subkorea.com/education/history/hist/baek/18.htm |보존날짜=2013-10-02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그의 후손들은 안고씨(雁高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신찬성씨록]]과 [[속일본기]]에서는 일본 안고씨의 시조로 훈해를 지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