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빈 장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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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의 존재가 1699년부터 존재하였다면 [[숙빈 최씨]]를 비롯한 궁인 전원은 물론 숙종 또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자학을 신봉하는 조선 사회에서 무속 행위는 국법으로 엄중히 금하였지만 궁 밖은 물론 궁 안에서도 자주 치루어졌고<ref group="주">광해군 부부, 인조, 민회빈 강씨도 굿을 즐겨 하였다.</ref>,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 김씨]]도 인현왕후와 함께 숙종의 두창의 쾌유를 기원하는 굿을 하였던 만큼 장씨의 신당 설치 자체는 굳이 문제 삼을 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숙빈 최씨는 신당의 존재에 이견을 주장하였고, 숙종은 숙빈 최씨가 거론한 신당의 존재를 조정 대신들에게 공식화하며 장씨가 몰래 신당을 차려 인현왕후를 시해하는 저주굿을 하였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사건 조사 당시의 편파성, 증거의 부족, 고문으로 인한 증언의 신빙성 문제 등으로 인해 희빈 장씨가 신당을 차려 굿을 한 것이 정말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세자의 쾌유를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혹은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숙종실록에는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 민씨를 저주한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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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부 : 장응인(張應仁, 정3품 첨지중추부사,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1689년 추증) - 중국어 역관
* 조모 : 박심(朴沈)의 딸 증 정경부인 남포 박씨(貞敬夫人 藍浦 朴氏)
** 아버지 : [[장형 (조선)|장형]](張炯, 1623년 2월 25일~1669년 12월, 1689년 추증) - 중국어 역관
** 전모(前母) : [[제주 고씨]](濟州 髙氏, ? ~ 1645년) - 고성립(高誠立)의 딸
*** 이복오빠 : 장희식(張希栻, 1640년 ~ ?, 1657년 역과식년시 장원, 사역원 종7품 직장) - 중국어 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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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659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