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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도장은 [[위서 (역사서)|위서]]에 따르면 [[환웅]]이 [[환인]]에게 받은 [[천부인]](天符印) 3과 중 하나인 인(印)이 최초이다. 본격적으로 한국에 도장이 소개된 것은 기원전 2세기 무렵으로 보인다. [[부여]]의 역대 왕들이 '濊王之印'(예왕지인)이라는 옥새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고구려]] ====
진고구려솔선한백장(晉高句麗率善韓佰長)이라는 관인 등 여러 점의소수의 고구려 인장이 유몰로유물로 남아있다.
==== [[신라]] ====
{{본문|신라의 인장}}
 
[[문무왕|문무대왕]] 때 관인을 주조하고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의[[신라]]의 인장은 고구려나[[고구려]]나 백제에[[백제]]에 비해 훨씬 많이 전해진다. 문자가 새겨진 도장, 문자가 아닌 문양으로 제작된 도장, 관직명이 적혀 있는 도장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안압지에서[[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목인(木印)이나 석인(石印), [[함안 성산산성]], [[이천 설봉산성]] 등에서 출토된 봉인(封印)은 당시 인장의 사용을 말해준다.
 
==== [[백제]] ====
아직 출토 유물은 없으나, 이름과 간지(干支)를 새겨 찍은 소수의 인문이 남아있으며, 양각원인(陽刻圓印) , 양각방인(陽刻方印), 음각방인(白文方印) , 음각원인(陰刻圓印) 등이 있다.
 
==== [[고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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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인장 갤러리 ===
<gallery>
파일:Seal of Silla.png|[[신라]]의 인장. [[경주 황룡사지|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청동 관인
파일:Seal of Goryeo.png|[[고려]]의 인장
파일:Seal of Goryeo King.svg|[[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