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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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emplate-Cardinal.svg|섬네일|right|300px|추기경의 문장. 상단의 [[갈레로]]와 가운데의 방패, 그 사이에 있는 십자가, 그리고 양 옆의 술과 맨 밑의
'''추기경'''(樞機卿, {{llang|la|Cardinalis}})은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누리는 [[가톨릭]]의 고위 [[성직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정식 칭호는 거룩한 로마 교회(로마교구)의 추기경(De Sanctae Romanae Ecclesiae cardinalibus)이다. 종종 ‘교회의 [[프린스|왕자]]’로 비유되어 [[전하 (호칭)|전하]](殿下, Eminentia)라는 존칭으로 불린다.
추기경을 뜻하는 라틴어 cardinalis는
== 역사 ==
오늘날 교황 선출은 추기경들이 담당하지만, 원래는 다른 주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로마 교구 성직자와 신자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교황의 권위가 점차 커짐에 따라 4세기부터 외부 세력이
추기경의 권위는 점차 높아져서 11세기부터는 교황 선출권을 갖게 되었으며, 12세기부터는 로마 교구를 포함한 주교좌 성당에 속한 성직자들도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고, 14세기에는 [[총대주교]]보다 상위의 권위를 갖게 되었다. 중세 후기부터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추기경들은 본래의 종교적인 업무 외에도 문화와 정치,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심지어 어떤 추기경들은 세속 정부의 요직을 겸하기도 하였다. 그 예로 [[헨리 8세]] 치세의 [[잉글랜드 왕국]]에서 총리직을 맡았던 [[토머스 울지]]와 [[프랑스]]의 재상으로 사실상 당시의 실권자였던 [[리슐리외]]를 들 수 있다. 특히 리슐리외는 오늘날까지 뛰어난 정치가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뒤를 이은 [[쥘 마자랭]] 역시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정치의
13세기 초만 해도 추기경은 불과 7명밖에 없었지만,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히 규모가 커져서 [[교황 식스토 5세]]는 추기경의 수를 주교급 추기경 6명, 사제급 추기경 50명, 부제급 추기경 14명, 합해 70명으로 제한하였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규정은 지켜졌다가, [[교황 요한 23세]]가 이 규정을 폐지하고
2020년
== 추기경 계급 ==
[[교회법]] 제350조에 따라 추기경단은 주교급 추기경, 사제급 추기경, 부제급 추기경으로 구별된다.
이 계급은 신품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명의로만 구별될 뿐이다. 즉, 추기경이란 품계는 없다.
아울러서 교회
[[추기경 목록|염수정]]추기경:[[서울]]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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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목록|망카네쿤]]추기경[[비엔티엔]]대목구장
교구장이란 단어는 한국
=== 주교급 추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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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급 라틴 예법 출신 추기경들이 라틴예법추기경중에서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을 선출하여 교황의 승인을 받게 되는데 ,그는 이미 지닌 로마주변 교구장 명의 직함에 더해 [[오스티아|오스티아 교구]]장의 명의를 추가한다.([[교회법|가톨릭 교회법]])
현재의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은 [[조반니 바티스타 레]](85세)
프란치스코
=== 사제급 추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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