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스 그릴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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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리는 개척자들에 대해서 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했다. 1865년 7월 13일 사설에서 “서부로가는 젊은이여! 서부로 가서 이 나라와 함께 성장하라!”고 유명한 호소했다. 이 문구는 원래 존 솔레에 의해 1851년에 ‘테레 호트 익스프레스’(Terre Haute Express)에 적힌 문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릴리의 것이라고 하는 쪽이 많다.<ref>[http://www.skagitriverjournal.com/US/Library/Newspapers/Greeley1-GoWest.html Skagit River Journal: ''"Go West , young man" Who wrote it? Greeley or Soule?'']</ref> 역사가 월터 A. 맥도걸은 아이오와의 그리넬 대학의 창시자 조시아 부쉬넬 그리넬의 “내가 그릴리가 처음 말했던 젊은이였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1925년 영화 ‘고 웨스트’에서도 다루어졌다.<ref>{{웹 인용 |url=http://www.llrx.com/features/quotedetective.htm |last=Shapiro |first=Fred R. |title=Who Said, "Go West, Young Man" - Quote Detective Debunks Myths |publisher=CUA Magazine |date=November 2007 |accessdate=2010-12-0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508091042/http://www.llrx.com/features/quotedetective.htm# |보존날짜=2008-05-08 |url-status=dead }}</ref>
그릴리는 일하는 사람의 변호인으로 모든 종류의 독점 기업을 공격했고, 철도 회사의 토지 특허를 부정했다. 산업은
그릴리는 유별함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더운 날에도 정장을 고집했으며,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녔다. 그는 심령술과 관상(골상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ref>[http://www.u-s-history.com/pages/h150.html www.u-s-history.com]</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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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리는 "트리뷴"을 노예 권력, 즉 노예 소유자들에 의한 연방 정부의 지배를 자유의 추구를 저해하는 음모로 간주하여 반대하는 선도적인 신문으로 만들었다. [[1861년]] 분리의 위기 때 [[미국 연합국]] 대해 강경 노선을 취했다. 이론적으로는 남부가 독립을 선언할 수 있다고 동의했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음모를 품은 폭력적이고, 뻔뻔한 자포자기의 소수자’가 있으며, 분리는 연방의 힘을 반토막 내려는 불법적인 음모라고 말했다. 그릴리는 전쟁 도중 [[공화당 급진파]]의 입장에 서서, 링컨의 중용 노선에 반대했다. 1862년 여름, ‘2천만명의 기도’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남군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공격과 발 빠른 노예 해방을 요구했다. 1개월 후 링컨이 [[노예 해방 선언]]을 하자 환호로 답했다.
1860년 이후 그릴리는 점차 ‘트리뷴’의 운영의 지배력을 잃고, 논설을 쓰는 횟수도 줄어들고 있었지만, 1864년에 링컨의 재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고, 그 논설이 재판되었을 때 전국적인 반향이 일어났다. 이상하게도 1863년부터 1864년 휴전 정책도 지지했으며, 카퍼헤즈 (북부 휴전주의자)와 논쟁에 휘말려 미합중국 연합군과의 타협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링컨은 아연실색했지만, 남군이 거부할
== 참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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