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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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경기의 후반 무렵부터 실물경제와 자산가격의 차이로 경제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989년 4월 1일부터 소비세가 도입되어 경제에 영향을 끼쳤고 일본은행에 의한 급속한 금융 긴축정책과 총량 규제를 계기로 한 신용 경색 등으로 경제 활동이 점차 수축되었다. 닛케이 평균주가는 1989년 최고치 38,915엔 87전을 정점으로 하락했으며 1990년에는 23,848엔 71전까지 하락했고 1990~1991년경 버블 붕괴를 초래했다.
 
본래대로면 정부가 경기대책에 전력을 쏟아부어야했을 시기지만, 당시는 55년 체제의 붕괴, 자민당의 분열과 비자민당 연립정권 탄생 이​​후이후 3당연립정권(자민당, 일본사회당, 신당사키가케)이 들어서는 등 정권의 틀이 계속 바뀌면서 유효한 경기 대책을 세우지 못 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긴급경기부양책 등으로 1993년경을 바닥으로 경기가 완만하게 회복되고 호전의 조짐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정의 재건을 서두르는 정부는 세수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소비세에서 활로를 찾으려고 했다. 또한, 한신​​아와지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 피해의 회복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위해 1997년 하시모토 정권은 국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소비세 인상을 단행했다. 이는 소비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하여 같은 시기에 발생한 아시아 통화위기, 부실채권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국가 대차대조표 조정에 따른 금융기관의 잇따른 파산 등이 겹치면서 경제상황이 악화됐다.
 
이후 인터넷버블(IT경기)과 그 붕괴에 따른 경기 변동 후, 2000년대 초반에는 고이즈미 구조 개혁의 영향으로 경기는 바닥을 치고 완만한 회복세를 지속했다.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은행의 불량채권 처리를 완료하고 대기업은 실적이 개선됐다. 성장률은 2% 내외로 유지됐으며 닛케이평균 주가도 상승했다. 장기적으로 제로금리 정책이 취해졌다. 하지만, 은행의 돈이 기업에 투자가 되지 않음으로써 닛케이평균 주가는 20,000엔을 넘지 못 했고, 2006년에는 17,225엔 83전이 최고였다. 이는 1990년대의 평균보다 낮은 값이다. [[GDP 디플레이터]]에 관해서도 1990년에 비해 100%를 삭감한 후 디플레이션으로 빠졌고 이후 회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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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유럽 금융 불안으로 주가가 폭락하고 일본의 많은 주요기업의 주가는 30년 전 주가까지 떨어져버려 주식에 관련해서는 이러한 상황을 "잃어버린 30 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 무렵 미국과 서유럽 등 다른 선진국들도 ​​일본을일본을 따라가듯이 앞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에 돌입했다.(일본화) 성장의 한계에 의한 구조적인 경제침체에 돌입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선진국의 경기침체는 단순한 경기 순환으로는 설명하지 힘들어 의견과 진단이 다양하다. 경제학자 피터 틸은 20세기의 성장동력이었던 혁신이 끝을 맞이했기 때문에 향후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의 큰 성장은 바랄 수 없을 거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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