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
편집 요약 없음 |
||
24번째 줄:
1995년 [[서경석]], [[장을병]] 등과 개혁신당을 창당한 후 민주당과 합당하여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고 탈당하였다. 2000년 [[홍사덕]]과 연대를 시도했으나 홍사덕의 [[한나라당]] 입당으로 실패했고, 이후 한나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김윤환 (1932년)|김윤환]], [[이기택]], [[이수성 (1939년)|이수성]] 등의 보수인사와 함께 [[민주국민당 (2000년)|민주국민당]]을 창당하여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02년에는 당시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서울 [[영등포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고 이후 바로 탈당하였다. 2004년에는 한국노총 주도의 [[사회민주당 (대한민국)|사회민주당]]의 대표를 맡아 출마했으나, 다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06년 3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열린우리당]] 특임행정위원을 지내다가 사퇴 및 탈당하였고 2007년 9월에서 2007년 12월까지 [[대통합민주신당]] 특임행정위원을 지내다가 사퇴 및 탈당,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녹색사회민주당 대표로서 [[박세일]] 교수가 주도하는 가칭 '국민생각'에 참여하였다. 그러다가 결별한후 녹색통일당을 창당한 후 민주통합당 공천탈락자들이 주도하는 [[정통민주당]]으로 합당하고 비례대표 1번으로 19대 총선에 출마하였다나 낙선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2780917]</ref>
1998년 pc통신망 나우누리에 '장기표 시사논평'이라는 정치논평 방을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2013년부터 인터넷에 '언론을 바로잡아 세상을 바로잡자'라는 슬로건으로 '뉴스바로'를 창간하여 2015년 현재 발행인 및 편집인으로 있으며, 2014년도엔 중국공산당중앙당교(중앙당교)의 기관지 학습시보의 등위원(鄧郁文) 편집장을 초청하여 토론회 및 강연을 주최하기도 했다. 또한 합리적 진보를 표방하며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박범진 전 의원,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 등 33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사회민주주의포럼(사민포럼)도 2014년 12월 '왜 지금 사민주의인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사민포럼은 2015년 상반기 창당을 목표로 삼기도 했다.
그는 정치권 진입을 원하는 세력이라면 보수-중도-진보 등 노선에 상관없이 무조건 끌어모아 신당을 창당하는 행보 관련에 여러 가지 비판도 상존한다. [[이부영]], [[김근태]] 등 오랜 재야 동지들이 대부분 성공적으로 제도 정치권계에 진입한 데 반해, 30년 넘게 계속 도전 중이다.▼
▲그런 그는 2020.4.15 총선에서 느닷없이 미래통합당 김해을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그는 정치권 진입을 원하는 세력이라면 보수-중도-진보 등 노선에 상관없이 무조건 끌어모아 신당을
▲1998년 pc통신망 나우누리에 '장기표 시사논평'이라는 정치논평 방을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2013년부터 인터넷에 '언론을 바로잡아 세상을 바로잡자'라는 슬로건으로 '뉴스바로'를 창간하여 2015년 현재 발행인 및 편집인으로 있으며, 2014년도엔 중국공산당중앙당교(중앙당교)의 기관지 학습시보의 등위원(鄧郁文) 편집장을 초청하여 토론회 및 강연을 주최하기도 했다. 또한 합리적 진보를 표방하며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박범진 전 의원,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 등 33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사회민주주의포럼(사민포럼)도 2014년 12월 '왜 지금 사민주의인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사민포럼은 2015년 상반기 창당을 목표로 삼기도 했다. 그런 그는 2020.4.15 총선에서 느닷없이 미래통합당 김해을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 전과 ==
76번째 줄:
==논란==
===영원한
장기표는 '영원한 재야'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2019년 6월과 2020년 4월 조선일보의 최보식이 만난 사람, 2019년 신동아 7월호 인터뷰에도 그리 나왔다. 하지만 장기표는
===거액의 민주화 포상금 거절했나===
90번째 줄:
|날짜=2019.06.22}}</ref> 그러므로 거액의 보상금을 거절했다는 건 잘못이다. 특히 장기표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당시 체포되지 않고 3년간 도피했기에 구금과 투옥을 하지 않았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관련자의 5.18 보상금은 구금일수에 따라 정해졌다. 장기표는 수형사실이 없으니 보상금을 신청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
===변절인가
장기표는 14대부터 21대까지 총 7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출마 정당은 민중당, 통합민주당, 민주국민당, 새천년민주당, 녹색사민당, 정통민주당, 미래통합당이었다. 7차례 출마 동안 민중당과 녹색사민당에서부터 통합민주당, 새천년민주당 등 민주당 계열은 물론 21대엔 미래통합당 후보로 김해을에 출마했다. 진보정당과 민주당, 미래통합당을 가리지 않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으며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한 인물이었다. 특히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하게 된 것에 변절이란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장기표는 변절이 아니라 정치적 소신이라고 말한다. 정권 심판을 위해 미래통합당으로 출마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ref>{{저널 인용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82&aid=0000993270
|제목=통합당 후보 출마 장기표 정치적 소신인가 변절인가
|출판사 =부산일보
|날짜=2020.04.01}}</ref>
===수많은 정당 관여, 진기록 양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