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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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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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융'''(扶餘隆, [[615년]] ~ [[682년]])은 [[백제]] 태자이자 [[당나라]] 장군이다. [[자 (이름)|자]]는 융(隆)이다. '''숭'''(崇)이라고도 한다.<ref>《[[당회요]]》, 《[[통전]]》(通典). [[당 현종]]의 이름인 이융기(李隆基)를 [[피휘]]</ref> 백제 멸망 후 [[당나라]]에 귀순하여 [[백제 부흥운동]] 토벌에 협조하고 당나라의 백제군공 웅진도독으로 부임하여 백제 유민들을 약탈하였다. 당나라에서 광록대부 태상원외경 겸 웅진도독 대방군왕까지 임명됐으나, 당의 [[웅진도독부]]는 [[신라]]에 의해 한반도에서 축출되어 요동으로 이주했다. 부여융이 마지막 태자인지에 관해서는 학설 대립이 있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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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
지위는 손자 [[부여경]]이 물려받았다. 1920년 뤄양에서 〈부여융묘지명〉을 발견하여 현재 중국 하남성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인연으로 뤄양시와[[뤄양시]]와 [[부여군]]은 자매결연을 맺고 의자왕의 묘 수색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끝내 찾지 못하고 그 흙만 가져와서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 의자왕과 함께 가묘(假墓)를 조성하였다.
 
== 미궁의 마지막 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