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안 폰 슈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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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Vonspee1.JPG|섬네일|막시밀리안 폰 스페슈페]]
'''막시밀리안 요하네스 마리아 후베르트스페슈페 백작'''({{llang|de|Maximilian Johannes Maria Hubert Reichsgraf von Spee}}, [[1861년]] [[6월 22일]] ~ [[1914년]] [[12월 8일]])는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활약한 [[독일 제국 해군]]의 제독(해군 중장)이다.
 
== 제1차 세계 대전 전 그의 생애 ==
비록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지만, 스페슈페 백작 가문은 라인지역의 명문 귀족이었다. 그는 1878년 [[독일 제국 해군]]에 입대했다. 1887–88년에 [[독일 서아프리카 회사]] [[카메룬]]의 항구들에서 해군을 지휘했다. 중국의 [[위화단 운동]] 당시 1899년 [[동아시아]]로 보내졌을때, 그는 전함 [[SMS 부란덴부르크]]의 부함장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전 그는 무기 개발과 관련한 많은 고위직을 맡았다. 1908년 [[북해 사령부]]의 참모장이 되었고, 1910년 1월 27일 해군 소장이 되었다. 그는 중국에 있는 [[자오저우 만 조차지]]내에 있는 [[칭다오]] 주둔 독일 [[동양 함대]]를 지휘할 권한이 주어졌다. 그의 함대의 [[장갑순양함]]들은 [[독일 해군]]에서는 가장 최신예 순양함이었으나, 하지만, 그의 배들은 [[전투순양함]]의 출현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것이었다.
 
== 제1차 세계 대전 ==
[[제1차 세계 대전]] 발발전에 그의 함대는, 연합군의 상선 및 수송선을 파괴하는데 주력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스페슈페 제독은 연합군의 힘을 경계하였다. 특히 [[일본 제국 해군]]과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사실상 그는 후자의 기함 [[전투순양함]] [[HMAS 오스트레일리아]] 1척만으로 그의 함대 전체 전력보다 우위에 있다고 기술했다.
 
따라서 [[칭다오]]에서 궁지에 몰리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스페제독은슈페 제독은 [[독일]]로 그의 함대의 귀환을 계획했다. 태평양을 지나, [[혼 곶]]을 돌아 [[대서양]] 북쪽으로 가는 향해였다. 스페슈페 제독의 해군본부 상관이 그에게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와 그의 배들이 운명에 마추치기전, 상대편에 큰 타격을 가하기를 희망했다. [[런던]]의 [[해군장관]] [[윈스턴 처어칠]]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그는 꽃병 속의 꽃이다." 적대 행위의 초기에 [[동양함대]]는 태평양 식민지들로 통상적인 검색 임무로 흩어지게 되었다.
 
[[장갑순양함]] [[SMS 샤른호르스트]]호와 [[SMS 그나이제나우]]호는 [[캐롤라인 제도]]에 있는 [[포나페]]에 있었다. 함대는 석탄공급 및 스탭 회의를 위해 북 [[마리아나]]의 [[파간섬]]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가 중요 정보로부터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스페슈페 제독은 [[경순양함]] [[SMS 뉘른베르크]]호를 최근 신문을 얻고, 독일 영사로부터 긴급 공문을 받기위해 미국 영토인 [[하와이]]의 [[호놀루루]]로 보냈다. [[SMS 뉘른베르크]]호는 [[크리스마스 섬]]에서 함대와 합류했다. 이리하여 [[영국]]의 요청에 따라 [[뉴질랜드 원정군]]이 [[독일령 사모아]]의 점령하였음을 알게 되자, 스페슈페 제독은 [[SMS 샤른호르스트]]호와 [[SMS 그나이제나우]]호를 이끌고, 정박중인 [[영국]]과 [[영연방 자지령]] 배들을 파괴하기 위해 사모아로 향했다.
 
그는 연합군 순양함과 수송함이 떠난 3일후인, 1914년 9월 14일에 [[아피아]]에 도착했다. 제독은 약 1600명의 훈련을 충분히 받지 못한 뉴질랜드 지원군이 [[우플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식민지를 손쉽게 재탈환 할 수 있었다. 그는 섬 상륙은 연합군이 지배하는 바다에서, 단지 임시적인 잇점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타히티]] [[파페에테]]로 향하기로 결정한다. 거기서 [[프랑스]] 배들을 공격하고, 그의 함대의 다른 배들과 합류한뒤, [[남 아메리카]]로 향했다. 1914년 11월 1일 [[칠레]] 중부 해안에서 벌어진 [[코로넬 해전]]에 참전하여, [[크리스토퍼 크래독]]경이 지휘하는 두척의 영국 [[장갑순양함]] [[HMS 굿 호프]]호와 [[HMS 맘모스]]호를 격침시켰다. 해전후 [[칠레]] [[발라파리소]]에서 독일인 주민들과의 환영회에서, 스페슈페 제독은 해전 승리에 꽃을 선물 받았다.
 
1914년 12월 8일 스페슈페 제독은 [[포클랜드 제도]]의 [[스탠리]]에 있는 석탄저장소를 급습했다. 그는 [[영국]]이 [[포클랜드 제도]]를 지키고, [[코로넬 (칠레)|코로넬]]에서의 패배에 복수하기 위해, 2척의 현대적이고 빠른 [[전투순양함]], [[HMS 인빈시블(1907)]]호와 [[HMS 인플렉시블]]호를 보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또한 [[스탠리]] 해군항에 [[HMS 카르나본]] [[HMS 콘월]] [[HMS 켄트]] [[HMS 브리스톨]] [[HMS 글라스고우]]호가 있었다.
 
[[포클랜드 해전]]에서, 스페슈페 제독의 기함 [[SMS 샤른호르스트]]호와, [[SMS 그나이제나우]], [[SMS 뉘른베르크]], [[SMS 라이프치히]]가 격침되어, 스페슈페 제독과 [[SMS 뉘른베르크]]호에 복무했던 그의 큰아들 해군 중위 "오토 폰 스페슈페", [[SMS 그나이제나우]]호에 복무했던 작은아들 "하인리히 폰 스페슈페"를 포함한 2200명의 독일 해병이 전사했다. 단지 [[SMS 드레스덴]]호와 보조함 "세이들리츠"호만 가까스르 탈출하였으나, "세이들리츠"호는 억류되었고, [[SMS 드레스덴]]호는 마침내 [[후안 페르난데즈 섬]]에서 발견되었고, [[마스 어 티에라 해전]]동안 그배의 승무원에 의해 침몰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후, 독일 해군 장교이자 스파이 [[프란츠 폰 린텔렌]]은 영국 해군 정보국의 [[윌리엄 레지날드 홀]] 제독과 인터뷰를 했으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영국의 암호 해독가들이 독일의 암호 코드를 해독, "거짓 전문"을 스페슈페 제독의 함대에게 보내 영국 [[장갑순양함]] 함대로 유인하였다. 그 "거짓전문"은 [[포클랜드 제도]]의 무선시설을 파괴시킬것을 독일 함대에게 명령한다는 내용이었다.
 
== 가족 관계 ==
* 배우자: 마가레타 바로네스 폰 데어 오스텐-사켄(1867–1929)
* 자녀(두 아들, 딸):
* 오토 폰 스페슈페(1890.7.10 [[킬]]에서 태어남 – 1914.11.8 남대서양,포클랜드섬 앞 바다, 뉘른베르크호)
* 하인리히 폰 스페슈페(1893.4.24 [[킬]]에서 태어남 – 1914.11.8, 남대서양,포클랜드섬 앞 바다, 그나이제나우호)
* 후베르타 폰 스페슈페(1894.7.11 [[킬]]에서 태어남 – 1954.9.18 [[본]])
 
{{기본정렬:스페, 막시밀리안 폰}}
{{전거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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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861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