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오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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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따르면 연노부(涓奴部)·절노부(絶奴部)·순노부(順奴部)·관노부(灌奴部)는 각각 비류나부(沸流那部)·연나부(椽那部)·환나부(桓那部)·관나부(貫那部)로도 불렸다. 이들 노(奴) 또는 나(那)는 부족 수준의 사회적 단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나(那)는 하천변의 토지를 뜻하는 천(川), 양(壤)과 같은 뜻으로 여진어와 만주어, 그리고 나나이어의 '나'와도 통하는 말로, [[고구려]] 초기의 '나' 집단은 하천이나 강변의 토착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추측된다.<ref>서정록, [[백제]]금동대향로 58쪽,2001년, 도서출판 학고재</ref>
 
고구려의 [[왕]]은 연맹장(聯盟長)으로서 5부의 수장이 되었다. 초기처음에는 왕계는왕이 불분명하나연노부에서 나왔으나 중앙집권화가 진전되며 왕족은 [[계루부]]의 고씨(高氏)로 고정되었다. 귀족의 [[수상]]직(首相職)인 [[대대로]](大對盧)는 5부에서 3년마다 선거로 뽑았다. 대대로는 7세기에 [[연개소문]]의 정변에 의해 신흥 귀족인 연씨(淵氏)로 세습되게 되었으나 곧 고구려가 멸망해 오래 세습되진 못했다.
 
== 순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