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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원 부여의 어원 분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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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9-06-08}}
 
'''가섭원'''(迦葉原)은 해부루가 건국한 [[동부여]]의 수도로 위치미상이다.
'''가섭원'''(迦葉原)은 해부루가 건국한 [[동부여]]의 수도로 위치미상이다. 가섭이란 용어는 석가의 제자중 '가섭존자'가 있다. 가섭은 우리말로 풀면 가서비, 가서브로 되며 인도유럽어(경음화)로 되면 카서피, 카서프가 되므로 흑해 연안에 있던 '카스피(Caspi)해를 말한다 할 것이다. 가섭원의 '원(原)'은 평야(기름진 땅)으로 보아야 한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왕검의 황후도 '비서갑'에서 나온 여인이다. 이 '비서갑'은 중국식 표기로 그대로 옮긴 것으로 우리말의 갑돌이, 갑순이, 을파소, 을보륵등 갑, 을은 앞에 나온다. 그러므로 거꾸로 읽으면 갑서비가 되며 자음 ㄱ이 탈락되면 가서비로 곧, 카스피를 말한다 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비교언어학상 틀림없는 명제에 도달한 것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의하면 [[해부루]]가 부여의 임금일 때, 대신 [[아란불]](阿蘭弗)의 꿈에 천제가 나타나, 동해 바닷가의 가섭원(迦葉原)이란곳으로 도읍을 옮겨라."라고 명해서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기로 했다. "동해 바닷가에 땅이 있는데 가섭원이라 한다. 땅이 기름져 오곡을 재배하기에 적합하니 가희 도읍으로 삼을 만할 것이다."고 했다. 그런데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기록에 동해 바닷가라고 지칭되어 있는데, 동해가 아닌 서쪽 바닷가로 해야 맞는 것이며, 파르티아제국(기원전 244-224)이 마침 카스피 남쪽에 있었다. 파르티아(Parthia)는 '광명의 치우'가 되며 페르시아 언어로 Perchava(광명의 아버지 차)로서 묘족(동이족)의 호칭이 된다. 이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 이후로 카스피 남부에 있었으며 불과 20년을 지탱한 것으로 보아 '가섭원 부여'일 공산이 크다. 고조선을 제1기, 2기, 3기로 나누어 연구한 결과에서 부여의 권역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
 
부여, 고구려는 고조선의 고토에서 건국한것이 되므로 고조선의 건국지(아사달-돋아 오르는 달, 신월(新月)가 중앙아시아라면 가섭원 부여는 카스피 부여가 되는 셈이다. 오늘날 사학계에서 발해만과 남만주권역을 고조선의 권역으로 보는 입장에선 '가섭원' 부여'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음에 찾을 수 없는 국가가 되고 만다.
 
[[해부루]]가 해모수에게 쫓겨나서 가섭원에 건국한 [[부여]]국을 [[동부여]]라고 한다. 하지만 해부루가 통치한 시대가 아닌 그 이후에 동부여가 건국되었다고 생각된다. [[광개토대왕]] 대에 점령당한 '동부여'의 경우 AD285년 모용선비의 부여 침공 이후 옥저로 도피한 난민들이 세웠다고 보거나, 4C이후 길림지역이 일시적으로 고구려에서 분리되었는데(당시 부여는 농안, 장춘 일대로 수도를 이전한 상태였다.) 다시 광개토대왕이 수복한 걸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