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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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취려'''(金就礪, [[1172년]] ~ [[1234년]] [[3월 22일]]([[음력 2월 21일]]<ref>『고려사』 권23, 「세가」23, 고종 21년(1234)에는 5월 21일(기미)에 사망했다고 되어 있지만, 「김취려 묘지명」에는 2월 21일로 되어 있다.</ref>))는 [[고려]] 후기의 무신, 장군다.
 
본관은 [[언양 김씨|언양]](彦陽)이며,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 김부(金富)의 아들이다. [[충렬왕]]과 [[충선왕]]의 후궁인 [[숙창원비]]의 할아버지증조부(또는 증조부조부)이다.<ref>고려사에 오빠 김문연은 김취려의 증손자라 한다. 언양김씨 족보에는족보에도 김문연의 증조부라 한다.</ref>
 
[[고려 고종]] 때 몽고군에 쫓겨 서북면을 침략한 [[거란족]]을 격퇴한 공으로 수태부(守太傅) 개부의동삼사 문하시랑평장사(開府儀同三司 文下侍郞平章事) 상장군(上將軍) 판이부사(判吏部事)가 되고, 이후 수태사(守太師) 특진주국(特進柱國)에 올랐다. [[고려 고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위열(威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