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멩겔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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멩겔레는 수용소에 도착한 수감자들 중 [[기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는데, 이들 중에는 오비츠(Ovitz)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루마니아]] 출신의 예술가 가족인 이들은 열 명의 가족 중 7명이 [[난쟁이]]였으며, 끌려오기 전에는 릴리풋 곡예단(Lilliput Troupe)이라는 이름으로 동유럽을 전전하며 공연을 하였다. 멩겔레는 이들을 종종 '나의 난쟁이 가족'이라고 부르며 아꼈다. 멩겔레의 실험은 과학적 가치가 모호한 것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의 눈에 염색약을 주사해 눈 색깔을 바꾸는 실험이나 [[마취]] 없는 늑골 적출, 기타 잔인한 외과 실험들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숨을 거둔 피실험자들의 눈은 멩겔레의 수집품이 되었다. [[레나 겔리센]](Rena Gelissen)이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동안의 증언에 따르면 [[1943년]] 10월경 멩겔레는 여자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멩겔레는 특별 작업을 할 사람을 선발한다는 명목으로 여자 수감자들을 선택하였으며, 이를 중노동에서 해방될 기회로 생각한 여자 수감자들은 멩겔레에게 끌려갔다가 [[불임수술]]과 충격요법 등을 받고 병에 걸리거나 죽음을 맞기도 했다.
 
헝가리 출신의 유태인 의사이던 [[니슬리 미클로시]] (Nyiszli Miklos)는 [[법의학]]과 [[독일어]]를 공부한 덕에 멩겔레에게 선발되어 그의 조수로 일하였으며, 훗날 멩겔레의 실험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에 따르면 멩겔레의 실험 대상이 된 이들은 일반 수감자들보다 나은 주거 환경에서 보다 좋은 음식을 먹었으며 가스실에 갈 위험도 없었지만 멩겔레는 이들을 실험재료로 생각하였을 뿐 결코 이들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다고 한다. 멩겔레는 필요에 따라 이들을 간단히 살해하고 해부하였다.
 
== 전후 생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