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스터블 백조 장신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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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 장소 및 날짜 ==
1400년 무렵 백조 엠블럼을 사용한 또 다른 인물로 베리의 공작이었던 [[장 1세 드 베리 공작|장]]이 있다. 그는 [[발루아 가|발루아 가문]]이었고 법랑으로 흰백조를 표현한 2개의장신구 장신구를2개를 주문하였다. 하나는 [[가시관]] 쓴 예수를 표현한 [[성물함]]인 [[가시관 성유물함]]으로 오늘날 영국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고, 다른 것은 [[성모자상]]을 표현한 [[황금 장미장]]인 [[골데네즈 뢰즐]]로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ref>By John Cherry in his original article on the jewel in 1969. See Platt, 183, and Steane, 131. However Cherry's later, briefer, references do not mention this theory.</ref>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던스터블 백조 장신구 역시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영국으로 향했을 수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에도 런던의 금세공장이 왕가를 위해 흰법랑을 입힌 세공품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어서 단정은 힘들다. 오늘날 영국에 남아 있는 금세공품들 가운데 다수가 런던의 토착 장인이 만든 것이거나 외국에서 잉글랜드로 건너와 작업한 장인의 것이라는 점도 고려하여야 한다.<ref>Stratford</ref>
 
제작 시기는 "약 1400 년" 보다 더 정확히 하기 어렵다.<ref>BM Highlights and collection database, all three Cherry works etc.</ref> 비슷한 양식이 더 넓은 시대에 걸쳐 사용되었기 때문에 백조의 모양만으로 시대를 특정할 수 없고, 백조의 목에 걸려 있는 왕관의 모양으로 보았을 때 헨리 4세와 매리 드보운의 결혼 이후 제작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헨리 4세의 즉위가 1399년 이었으므로 던스터블 백조 장신구의 제작 연도는 가장 이르게 보아 1400년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헨리 5세 역시 같은 백조 문양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 장신구의 제작 연도는 헨리 5세 치세 까지도 늦추어 질 수 있다. 게다가 흰색 법랑이 아닌 부리에 사용된 붉은색 법랑과 같은 기술은 그 당시 파리에서도 일반적으로 쓰이지는 않은 것이다.<ref>Tait, 26</ref> 한편 1430년대가 되면 흰법랑을 덮는 론드보스 양식의 유행이 끝나기 때문에 그 보다는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ref>Tait, 26</ref> 다만 헨리 5세가 왕위에 있던 1413년에서 1454년 사이에 웨일스 공은 공석이었기 때문에 추정하기로는 1413년 보다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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