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크 (138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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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메라니아의 에리크'''({{llang|da|Erik af Pommern|에리크 아프 포메른}}, {{llang|no|Erik av Pommern|에리크 아브 포메른}}, {{llang|sv|Erik av Pommern|에리크 아브 포메른}}, [[1382년]] - [[1459년]] [[9월 24일]])는 [[칼마르 연합]]으로 즉위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의 공동 군주이다. 덴마크의 국왕 '''에리크 7세'''({{llang|da|Erik VII}}, 재위: 1396년 ~ 1439년), 노르웨이의 국왕 '''에리크 3세'''({{llang|no|Eirik III}}, 재위: 1389년 ~ 1442년), 스웨덴의 국왕 '''에리크 13세'''({{llang|sv|Erik XIII}}, 재위: 1396년 ~ 1439년)에 해당한다.
 
[[포메라니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뤼겐발데(Rügenwalde, 현재의 [[폴란드]] [[다르워보]](Darłowo))에서 바르치스와프 7세(Warcisław VII) 공작과 [[메클렌부르크]]의 마리아 공작부인의 아들로아들 '''에릭'''({{llang|pl|Eryk}})으로 태어나 모친 마리아의 이모이자 에리크의 외이종조모인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1세]] 여왕의 양자가 되었다. 에리크의 외외증조부는 [[발데마르 4세]]이며 외할머니가 [[잉에보르 애 단마르크 왕녀]](Ingeborg af Danmark)이기에 마르그레테의 뒤를 이어 왕위를 잇기에 자격이 충분했다. 에리크는 마르그레테 1세 여왕의 지원으로 1397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세 왕국의 공동 군주가 되었고 그 후 1412년까지는 마르그레테가 [[섭정]]을 맡았다.
 
에리크는 독일에서의 영향력 강화에 힘쓰고 세 왕국으로부터 많은 세금을 걷었다. 결국 1434년에는 스웨덴에서 [[엥엘브렉트 엥엘브렉트손]]이 주도한 광부들의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에리크는 세 왕국에서 차례대로 폐위되었고 포메라니아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 이후 세 왕국의 왕위는 조카 [[크리스토페르 3세|크리스토프 폰 팔츠노이마르크트 백작]]<ref>여동생 포메라니아의 카타르지나(Katarzyna)의 아들</ref>이 대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