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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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창기 ===
{{참고|대한국민항공|대한항공공사}}
[[1929년]]에 [[신용욱]]이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함으로써 태동하였다. 이후 조선비행학교는 [[1936년]] [[10월]]에 조선항공사업사로 명칭을 바꾸면서 정기 운항을 시작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항공사업사는 미 군정의 허가를 받아 [[1946년]] [[3월 1일]] [[대한국민항공|대한국민항공사]]({{llang|en|Korea National Airlines}})([[1948년]] 10월까지는[[10월]]까지는 대한국제항공사)로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수요 급감과 환율 상승으로 인한 운영상의 어려움, [[신용욱]]의 투신자살로 도산위기해 처했으나 [[1962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자하여 [[대한국민항공사]]를 인수, [[대한항공공사]](大韓航空公社)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부채와 누적 적자가 무려 27억 원에 달하는 등 만성적인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어 민영화를 추진하게 됐고, [[1969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인천]] 거점의 운송전문 기업인 [[한진그룹|한진상사]]에서 대한항공공사의[[대한항공공사]]의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14억 5,300만 원에 인수하는 동시에 민영화되어 현재의 대한항공으로 발족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3153041 45번째 생일 맞은 대한항공, 부실 골칫덩이가 민간 외교관으로] - 매일경제</ref>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제트기로는 [[맥도넬더글러스 DC-9|DC-9]]기 1대, 프로펠러기로는 당시로서는 노후한 [[더글러스 DC-3|DC-3]]기 2대, [[더글러스 DC-4|DC-4]]기 1대, [[포커 F27 프렌드십|F-27]]기 2대, [[FC-27]] 2대로 총 8대를 보유하고 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0270271|제목=2007년 증시를 주도할 유망종목은?|날짜=2006-12-24|출처=뉴시스}}</ref>. 민영화 초기, 노후 항공기 처분 계획과 전 노선 제트기 운영화를 목적으로 프로펠러기를 모두 처분하려 했으나 노후 항공기였던 DC-3 4기와 [[FC-27]]기만27기만 퇴역하였으며, F-27기의 경우 오히려 3대 더 도입하여 국내선에 투입하였다.<ref name="YS-11">{{뉴스 인용|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9040300099207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9-04-03&officeId=00009&pageNo=7&printNo=940&publishType=00020|제목=YS-11 중형기 3대도입 부산-후쿠오카(福岡)선 강화 KAL|날짜=1969-04-03|출처=매일경제(뉴스 라이브러리)}}</ref> 또한 국내선과 단거리용으로 [[일본]]에서 [[일본항공기제조 YS-11|YS-11]]기를 도입하여<ref name="YS-11" /> [[1976년]]까지 사용하였다.
 
=== 성장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