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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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역사상에서의 보티건 ===
6세기의 성직자이자 역사가인 [[길다스 사피엔스|길다스]]의 저서인 <브리타니아의 멸망과 정복>에 의하면 보티건은 부유한 지주 계급에서 태어나 막시무스 황제의 딸인 세베라와 결혼하였으며 425년경에는 남부 [[브리튼인의 왕]]으로서 30년 동안 권력을 행사한 인물이었다.<ref>청아출판사 저.이야기 영국사. 61쪽</ref> 당시 [[브리튼인]]들은 [[게일인]], [[픽트인]], [[색슨인]] 등 이민족들의 침략을 받고 있었으며, 이에 보티건은 이들 침략자들을 막아내기 위해 [[유트인주트족]] 출신의 헹기스트와 호르사를 용병으로 고용하였다.<ref>청아출판사 저.이야기 영국사. 62쪽</ref> 이들 용병들은 동쪽 해안으로는 [[색슨인]]들의 침입을 막아내고, 서쪽으로는 [[아일랜드]]에서 건너오는 [[게일인]]들의 침략을 방어했는데, 이들 용병들의 정착지로 켄트의 싸네트 섬이 주어졌다. 하지만 보티건과 연합하고 있던 [[브리튼인]] 부족들은 차츰 보티건의 통치력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식량 지원과 세금도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헹기스트와 호르사에게 주어지는 보수의 양도 차츰 줄어들자 헹기스트는 보수를 올리고 보티건을 비롯한 [[브리튼인]]들과 계속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보티건에게 시집보냈지만 보티건의 아들인 보티머가 유트인들을주트인들을 공격하게 되면서 사태가 악화되고 만다.<ref>청아출판사 저.이야기 영국사. 63쪽</ref> 이에 보티건은 급히 사태를 수습하고자 헹기스트가 자신에게 시집보낸 자신의 아내를 내세워 헹기스트와 왕국을 분할하는 조약을 체결하였지만 이 조약으로 켄트에 [[유트인주트족]]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유트인주트족]]들은 [[켄트 왕국]]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후 보티건은 내부의 반란으로 거주하던 성이 화염에 휩싸이면서 불에 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아서 왕 전설]]에서의 보티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