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아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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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과정 ==
[[그림파일:Pavia campaign (1524-25).png|thumb|left|프랑스군의 진격 상황]]
프랑스는 [[비코가 전투]]의 패배로 롬바르디아를 상실했다. 프랑수아 1세는 보니베의 영주 [[기욤 구피에]]에게 탈환을 명령했으나 [[세지아 전투]]에서 황제군에게 패배했다. 황제군 사령관 [[샤를 드 란누아]]는 [[페르난도 다발로스]], [[페스카라 후작]], 부르봉 공(公) 샤를 3세에게 명령해 프로방스 지방을 공격하게 했으나 [[마르세유 공방전]]에서 시간을 허비해 프랑스군이 구원해 오자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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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1세가 올버니 공작을 보내 교황을 지원하자 란누아는 [[피오렌추올라]] 근처에서 프랑스군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고용한 [[지오반니 데 메디치]]의 악명 높은 용병부대 "검은군단"과 맞부딪친 황제군은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해야만 했다. 메디치는 페라라 공작이 모은 화약과 포탄을 가지고 파비아로 귀환했지만, 그라우뷘덴 출신의 5천명에 가까운 [[스위스 용병]]이 그들의 고향에 쳐들어온 란츠크네흐츠 용병부대를 막기 위해 군을 이탈함에 따라 프랑스군은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림파일:Pavia relief.jpg|thumb|파비아 전투를 묘사한 부조]]
[[1525년]] 1월 란누아는 [[게오르크 폰 프룬즈베르크]]가 이끄는 15,000명의 란츠크네히츠를 지원받고 공격을 재개했다. 다발로스는 산 안젤로의 프랑스군 기지를 점령하고, 파비아와 밀라노 사이의 프랑스군 연락망을 끊었다. 란츠크네흐츠도 벨지오조소로 진군해 마을을 점령했다. 2월 2일경에는 란누아는 파비아에 접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