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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平安道, 또다른 이름은 [[관서 지방]])는 조선의 [[팔도]] 가운데 하나에 속했다. 평안도는 한반도 북서부에 위치해 있고, 중심지는 [[평양직할시|평양]]이다.
 
==역사==
=== 고조선시대와 한사군 ===
 
평안도는 [[고조선|고조선]](古朝鮮)의 중요한 영역중의 하나로서, 철기문화가 발달했으며 대동강 양안에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어, 고대 한반도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평양이 고조선의 수도이었는 지는 불분명하나, 대체적으로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王儉城)으로 추정한다. [[위만조선]]이 멸망하자 [[한나라]]가 이곳에 [[한사군]]을 설치했으나, 토착민의 반발이 심해 [[낙랑군]]을 제외한 군현은 모두 폐지되거나 요동 지역으로 물러갔다. 그 이후의 낙랑군 또한 정치적 영향력을 잃고, 무역 기관으로서의 역할만 담당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고구려와 안동도호부 ===
 
[[고구려]] [[미천왕]]이 [[312년]]에 [[낙랑군]]을 공격하여 영역을 점령하면서 평안도 일대는 고구려의 직속 영토가 되었다. 이후 [[광개토대왕]]이 남정(南征)을 할 때 전초 기지가 되었으며, [[장수왕]] 15년([[427년]])에 왕이 국도(國都)를 [[국내성|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으로 옮기면서, 추후 241년간 고구려의 심장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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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일대는 [[668년]]에 [[신라|나]][[당나라|당]](羅唐)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고구려가 무너지면서 도시로서의 기능을 잃게되었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통치하는 기구인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세우게 되었고, 후에 [[나당전쟁]]의 지휘 기구가 된다. 그러나 나당전쟁에서 당나라가 패배하게 되면서, 안동도호부는 [[요동성]]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이 지역은 무주(無主)의 공백 지역이 된다.
 
=== 발해 ===
 
[[698년]]에 [[발해]](渤海)가 건국되면서, 평안도 지역도 차츰 발해에 속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발해의 5경 중에 하나인 서경 압록부(西京鴨綠府)의 행정 구역에 포괄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해가 쇠퇴하자 평양 일대는 다시 무주지가 되었으나, [[고려 태조|태조]]가 북진정책으로 인해 평양 근교는 고려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 고려 ===
태조는 평양과 그 일대 지역을 성역화(聖域化)하였으며, 평양을 고려 3경 중의 하나인 [[평양직할시|서경(西京)]]으로 삼음으로써 황도로서의 기능이 부활하게 되었다. [[고려 성종|성종]] 11년([[995년]])에 고려를 10도로 구획하면서 서경과 교외 지역을 관서도(關西道)로 정했다. 나중에 5도 양계 중에 하나인 북계(北界)가 되었으며, [[고려 숙종|숙종]] 7년([[1102년]])에 서북면(西北面)으로 개편되었다.
 
=== 동녕부 시기 ===
[[1269년]](원종 10년) 서북면 병마사의 기관(記官)인 [[최탄]](崔坦) 등이 난을 일으켜 서경을 비롯한 [[고려의 행정구역|북계]](北界)의 54성과 자비령(慈悲嶺) 이북 [[고려의 행정구역|서해도]](西海道)의 6성을 들어 원나라에 투항하였다.
 
[[1270년]](원종 11년) [[쿠빌라이 칸]]은 자비령을 경계를 삼아 그 이북의 영토를 모두 원나라에 편입하고 서경에 동녕부를 설치하였다. [[1290년]] 원나라는 고려의 끈질긴 요구를 받아들여 이 지역을 고려에 돌려주고, 동녕부를 [[요동]](遼東)으로 옮겼다.
 
=== 조선 ===
 
평안도는 [[조선]](朝鮮) 개국 21년 뒤인 [[조선 태종|태종]] 14년([[1413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름은 평양의 '평'자와 안주의 '안'의 글자가 합쳐저서 만들어졌다. [[세종대왕|세종]] 대(世宗代)에는 4군 6진 중에 4군이 설치되어 압록강을 온전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세종 23년([[1440년]])에는 4군을 [[무창군|무창군(茂昌郡)]]으로 통폐합하고, 세종 26년에는 [[우예군|우예군(虞芮郡)]]이 신설되어 평안도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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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세조대(世祖代)]]에 이르러 무창군과 우예군이 폐지되었으나, [[조선 정조|정조대(正祖代)]]에 무창진이 설치되어 변경을 다시 개척하게 되었다.
 
==== 23부제(府制)와 13도제(道制) ====
 
[[1895년]]에 [[을미개혁]] 중의 하나인 [[23부제]]가 시행됨에 따라서 평안도는 북동부가 강계부(江界府)에, 북서부는 의주부(義州府), 남부는 평양부(平壤府)에 속하게 되었으나, [[1896년]]에 있었던 [[]] 강계부와 의주부는 [[평안북도]]로, 평양부는 [[평안남도]]로 확정되었다. 이는 [[일제강점기|일제 치하]]와 광복 직후에서도 지속되었다.
 
=== 6.25와 북조선 ===
 
일제로부터 독립을 성취한 [[대한민국|한국]]에서 [[조만식]]을 중추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평남건국준비위원회]](平南建準委)를 세우자 평안남북도(平安南北道)가 그 중심이 되었다. 38도선 이북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군정이 시작되면서 [[한반도]] 적색화(赤色化)의 중심 지역이 되었다. [[한국전쟁|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휴전선의 이북 지역은 모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의 점거 아래에 있게 되었으며, 평양은 북조선의 핵심 도시로 육성되었고, 북조선의 최대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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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도시 ==
 
* [[평양시]] - [[고조선]]과 [[고구려]]의 고도(古都)로 성장한 도시로서 현재 북조선의 수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