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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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몇몇 [[북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군대를 보내긴 했지만, 서방의 원조는 오스만 제국의 전력과 견주기엔 너무나 미미한 정도였다.
 
==양쪽의 상황==
동로마 제국의 군사는 대략 7,000명으로 그 중 2,000명은 용병이었다. 도시는 대략 20k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육지에 면해 잇는 5.5km의 [[테오도시우스 성벽]], [[금각만]]과 면해 있는 7km의 해안 성벽, [[마르마라 해]]와 면한 7.5km의 성벽으로 당시 역사상 최고로 굳건한 성벽이었다.
[[File:Siege of Constantinople 1453 map-fr.svg|thumb|left|콘스탄티노플 공방전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상황]]
[[동로마 제국]]의 군사는 대략 7,000명으로 그 중 2,000명은 용병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포위가 시작될 때 난민을 포함해 약 5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콘스탄티노플]]에 있었다. [[도르가노]]가 이끄는 [[터키인]] 부대도 바다쪽 성벽을 지키고 있었다. 터키인 부대는 동로마 제국에 충성을 다했고,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는 순간까지도 함께 싸웠다.
 
동로마 제국의 군사는 대략 7,000명으로 그 중 2,000명은 용병이었다. 도시는 대략 20k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육지에 면해 잇는 5.5km의 [[테오도시우스 성벽]], [[금각만]]과 면해 있는 7km의 해안 성벽, [[마르마라 해]]와 면한 7.5km의 성벽으로 당시 역사상 최고로 굳건한 성벽이었다.
 
이에 맞서는 오스만쪽의 병력은 다소 의견차이가 있는데 대략 [[예니체리]]군단 10,000~20,000명을 포함 전체 80,000~200,000명 정도로 보인다.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이유는 당시 방어쪽에 있었던 동시대의 목격자들의 기록은 대개 과장된 점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