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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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경순왕]]의 [[왕자]]들과 8자(子)들을 별도 인물이라 하였다.<ref>아들 김영분(金永芬)과 3자 김명종(金鳴鍾)도 별도 인물이라 하였다.</ref> 또 5자 '석'(錫)은 [[의성 김씨]] 시조, 6자 '건'(鍵)은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지고, 7자 '선'(鐥)은 [[언양 김씨]] 시조, 8자 '추'(錘)는 일선군(一善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 분파(추정)상계 소원 ===
==== 벽상공신내사령공파영분공파(추정) - 영분공파 벽상공신내사령공파 ====
* [[경순왕]]의 3자로 추정되는 인물인 '''김명종'''(金鳴鍾)을 파조로 소원(遡源) 시켰다. 시호가 영분공(永芬公)이라 한다.<ref>조선 후기 1784년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조선조 말에 들어와서 김영분(金永芬)과 김명종(金鳴鍾)을 동일인이라 하다가, 최근에는 별도 인물이라 하며, 김영분(金永芬)은 신라(新羅)의 종성(宗姓)으로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라 한다.</ref>
** 5세손 김예겸(金禮謙)이 [[고려]]초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내사령(內史令)을 역임했다.<ref>『고려묘지명집성』에 신라왕의 후예라 한다.</ref>
 
==== 평장사공파대안군파(추정) - 대안군파평장사공파 ====
* [[경순왕]]의 4자로 추정되는 인물인 '''김은열'''(金殷說)을 파조로 소원(遡源) 시켰다. [[고려 태조]]의 외손으로 평장사(平章事) 시중시랑(侍中侍郞)을 역임하고 보국대안군(輔國大安君)에 봉해졌다고 한다.<ref>조선 후기 1784년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하였다.</ref>
** 6세손 김봉모(金鳳毛)가 [[고려]] 조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정평공(靖平公)의 시호를 받았다.<ref>《고려사》에 신라(新羅)의 종성(宗姓)으로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라 한다.</ref>
** 12세손 김덕재(金德載)가 [[조선]] 개국 보좌공신(補佐功臣)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했다.<ref>[[경순왕]]의 후예라 한다.</ref>
 
=== 지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