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르 하이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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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교우 관계는 그의 지적이고 문학적인 탐구를 잘 보여 준다. 그는 빅토리아기 문단에서 활약하던 소설가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 역사가이자 저술가인 토머스 칼라일과 교유했다. 그는 그들과 자주 매력적인 편지들을 주고받았고, 새커리와 테니슨이 어려움을 겪던 젊은 시절에는 그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또 당시 올리버 크롬웰의 전기를 집필 중이던 칼라일을 위해 자신의 가문 영지에 들어 있던 네이스비 들판에 대해 조사해 주기도 했다.
 
1851년에 플라톤풍 대화록인 ≪유프라노어−젊음에 관한 한 대화≫를 자비로 발간했던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거주하던 지역의 방언들과 고전어에 관심이 많았고, 고전 작품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를 진지한 번역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고 또 궁극적으로 ≪루바이야트≫의 발간으로 이어진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 어린 에드워드 카우얼과의 만남이었다. 1844년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카우얼은 18세, 피츠제럴드는 35세였다. 보기 드문 언어 재능을 지닌 카우얼은 이미 라틴어·그리스어·스페인어·페르시아어에 능통해 있었고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는 중이었다. 카우얼로부터 스페인어를 배운 지 3년 만에 피츠제럴드는 스페인 극작가 칼데론의 희곡 6편을 번역해 자비로 발간했고, 1852년 12월부터 옥스퍼드에서 카우얼에게 페르시아어 교습을 받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어에 어느 정도 친숙해진 그는 1856년에 페르시아 시인 자미의 ≪살라만과 압살≫을 번역해 자비로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