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71번째 줄:
뛰어난 웅변술과 감각의 소유자였던 히틀러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베르사유 체제]], [[대공황]] 이후 정권을 잡았다. 이후에 독일 [[민족]] 생존권 수립 정책을 주장하며 [[자를란트]]의 영유권 회복과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병합|병합]],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폴란드]] [[폴란드 침공|침공]] 등을 일으키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전쟁 중 그의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나치 강제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학살당했다. 또한 히틀러는 상당수의 폴란드 사람들에게까지도 유대인이라고 모함하여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강제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같이 학살했다.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집시]]와 [[장애인]]도 있었다.
 
승승장구하며 전세를 확장하던 독일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패배하였고 히틀러는 [[1945년]] [[4월 29일]] 소련군에 포위된 [[베를린]]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한 뒤 이튿날 [[베를린]]의 총통관저 지하 벙커에서 [[시안화칼륨]] 캡슐을 삼키고 권총으로[[발터 P38권총]]으로 자신을 쏘아 [[자살]]했다.<ref>[http://news.bbc.co.uk/2/hi/europe/1800287.stm Hitler's final witness.] BBC News, [[2002년]] [[2월 4일]].</ref>그러나 독약 캡슐을 쓰지 않고 권총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ref>히틀러 평전, 요하임 페스트, 푸른 숲.</ref>
 
그의 어머니인 [[클라라 히틀러|클라라]]와 결혼하기 전 이미 부친 [[알로이스 히틀러]]에게는 장남 [[알로이스 히틀러 2세|알로이스 2세]]와 딸 [[앙겔라 히틀러|앙겔라]]를 두고 있었고 결혼 후 아돌프를 갖기 전 낳은 클라라의 아들 두 명과 딸 한 명은 모두 일찍 죽었다. 양봉일에 열중해있던 아버지와 아돌프의 관계는 소원했던 반면 이미 자신의 친자식을 셋이나 잃은 클라라는 아돌프마저 일찍 죽게될까 두려웠고 그를 애지중지하며 키워 아돌프는 클라라의 응석받이가 되었다. 이어 [[1893년]] 남동생 에드문트가 태어났고, [[1896년]] 여동생 [[파울라 히틀러|파울라]]가 태어났으나 에드문트는 일찍 죽게 되고 결국 아돌프와 파울라만이 클라라의 친자식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또한 아돌프가 7세 되던 해 당시 14세였던 그의 형 알로이스 2세는 아버지 알로이스와의 마찰로 가출하게 된다. 또한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출신이라는 설이 한때 돌기도 했지만,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