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 (민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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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역사}}
'''정령'''(丁零) 또는 '''고거'''/'''고차'''(高車), '''철륵'''(鐵勒)은 예니세이 강 상류에 존재하던 [[북아시아]]의 민족이다. 원래 발음 Tiele를 한자로 음차했다. 5세기 초엽, 정령은 [[유연 (나라)|유연]]의 지배 하에 있었다. 5세기 말 [[수나라]] 서북 [[핑량]]에 정주하던 괵튀르크가 유연을 멸망하자, 튀르크에 속해 있다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고차]]국을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ref>호리카와 토오루, “아리아 시대(이슬람 이전 시대)의 중앙아시아,” 《교양인을 위한 중앙아시아사》, 마노 에이지, 호리카와 토오루 편집, 현승수 옮김(서울: 책과함께, 2009), p.44.</ref> 철륵이 튀르크의 음차라는 주장도 있으나 중국 서북 간쑤성에서 기원한 [[돌궐]]과는 다르게 북아시아 초원(현재 러시아 예니세이 강 상류)에 거주하던 민족이라서 투라니드계인 튀르크와 다른 부류로 보여진다. 카자흐스탄인과 키르기스스탄인의 주요 조상이기도 하다.▼
▲'''정령'''(丁零) 또는 '''고거'''/'''고차'''(高車), '''철륵'''(鐵勒)은 예니세이 강 상류에 존재하던
== 기원 ==
정령(철륵)은
3세기 경
적진의 사촌형이었던 적료(翟遼)는 정령족을 이끌고 남쪽으로 달아나 여양(黎陽)태수 등념지(藤恬之)에게 항복한다. 적료가 386년 정월에 등념지를 죽이고 여양을 점거하자 태산(泰山) 태수 장원(張願)이 적료에게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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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료에 이어 적소(翟釗)가 뒤를 이었다. 392년 새해가 밝자 모용수는 노략질을 하는 적위를 공력하였다. 적소는 이에 대응하여 관도를 선제공격하며 역공세를 편다. 모용수가 여양에서 도하할 준비를 하자 적교가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병력을 배치한다. 모용수는 서쪽으로 40리 떨어진 서진으로 군영을 옮기고 함선 100여 척을 만들어 도하하려는 속임 전법을 구사한다. 적소는 모용수의 속임수에 넘어가 서진으로 병력을 이동하였다. 적소가 여양진을 비운 사이 숨겨두었던 모용진(慕容鎭)의 별동대가 황하를 건너 군영을 설치하였다. 적소는 다시 여양진으로 돌아가 적의 군영을 공격하였으나 [[서진]]에서 건너온 [[모용농]] 군대에 협공을 받아 패주하였다. 적소는 단신으로 서연으로 도주하였으나 1년 후 반란을 획책하다가 참수되었다.
이후, 정령은 유연에게 귀속된다. 485년경
== 고차의 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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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분류:북아시아]]▼
[[분류:유목민족]]▼
[[분류:오호 십육국 시대]]
[[분류:중국의 고대 민족]]
[[분류:정령 (민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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