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칸토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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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병은 특히 말년에 심해져 여러 망상적인 주제에 집착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는 스스로를 신성한 임무를 가진 자로 여기고 (실제로 크로네커에게 공격받은 전력이 있지만) 다른 학자들이 자신을 중상모략하고 있다며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1904년 [[쾨니그 줄러]]에 의해 칸토어의 집합론의 핵심 개념이었던 [[정렬 정리]]의 "반증"을 발표되자 (이후 오류가 발견되었지만) 칸토어는 큰 충격을 받아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칸토어는 이후 매 2~3년마다 입원을 반복하였다.
 
결국 1913년에 [[할레-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은퇴한 칸토어는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시기 동안 궁핍과 영양 부족에 시달렸다. 1917년에 마지막으로 [[할레]]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칸토어는 계속해서 아내에게 퇴원시켜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다가 1918년 1월 6일 심장마비로 병원 내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묘비에는 "수학의 본질은 그것이 갖는 자유로움에 있다(Das Wesen der Mathematik liegt in ihrer Freiheit)"는 그의그가 유명한언급한 어록이말이 쓰여 있다.
 
== 주요 업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