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파헬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4번째 줄: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 1653년 9월 1일 세례 ~ 1706년 3월 9일 매장)<ref>[http://www.phon.ucl.ac.uk/home/wells/blog0609.htm Wells, J. C. (2006)], [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pachelbel dictionary.com], [http://camba.ucsd.edu/phonoloblog/index.php/2006/07/20/english-liquid-dissimilation/ phonoloblog]</ref>은 [[바로크]]시대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남독일오르간악파를 절정기를 이끈 오르간 교사였다. [[세속음악]]과 [[종교음악]]에 걸쳐 방대한 작품들을 작곡했으며, 코랄 프렐뤼드와 [[푸가]]의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중기 [[바로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자리매김하였다.<ref> [GroveOnline|Pachelbel: (1) Johann Pachelbel: 3. Liturgical organ music|Butler, H. Joseph|23 5|2007] </ref>
 
파헬벨의 곡은 그의 일생동안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는 많은 제자를 두었고, 그의 작품들은 서부와독일 중부남부와 독일중부 작곡가들에게 모델이본보기가 되었다. 오늘날 파헬벨은 ''[[카논|《세 대의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카논과 지그 D-장조(Kanon und Gigue in D-Dur für drei Violinen und Basso Continuo)》]]''과 오르간을 위한 샤콘느 바 장조, 토카타 마 단조, 그리고 건반을 위한 변주곡집인 아폴로의 육현금(Hexachordum Apollinis) 등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는 선율과 화성적 명료성을 강조하여 비교적 복잡하지 않은 대위법 스타일을 선호하였다. 북스테후드와 비교할 때 그 역시 실내악과 성악에서 다양한 앙상블과 악기의 조합을 실험하였으며, 많은 곡에 매우 풍부한 기악 효과를 부여하였지만, 기교적 고난도나 화성적 모험에 대한 추구는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