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민항 296편 불시착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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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고 정보
| 사고명 =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중국민항 296편 불시착 사건
| 그림 = CAAC Trident Söderström.jpg
| 발생일시 = [[1983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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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중국민항 296편 불시착 사건'''(中國民航二九六編不時着事件)은 [[1983년]] [[5월 5일]] 오후 2시에 승객 96명(납치범 6명 제외), 승무원 9명을 태운 [[중국민용항공국]](중국민항) 소속 [[호커 시들리]] [[:en:Hawker Siddeley Trident|트라이덴트 2E]] 여객기<ref>트라이덴트는 [[린뱌오]]가 [[1971년]] [[9월 13일]] 쿠데타 미수에 그친 후 서둘러 망명길에 올랐다가 [[몽골]]에서 추락사했을 때 탔던 기종이다. [[린뱌오]]가 탄 것은 1E였다.</ref> 1대가 [[강원도 (남)|강원도]] [[춘천시]]의 주한미군 헬기 비행장인 '[[캠프 페이지]]'(CAMP PAGE)에 불시착한 사건을 말한다.<ref>[http://economy.hankooki.com/lpage/economy/200805/e2008050417495297490.htm 중국 민항기 사건] {{웨이백|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conomy/200805/e2008050417495297490.htm |date=20111113131421 }}2008-05-04 《한국일보》</ref> [[중화인민공화국]] 본토를 출발한 여객기가 [[대한민국]]에 착륙한 일은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후 처음이었다. 당시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미수교 상태였기 때문에 외교적, 정치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이 사건으로 [[한국 전쟁]] 이후 대한민국과 중국 양국 정부 간에 첫 번째 공식 외교 접촉이 성사되었다.<ref>[http://cafe.naver.com/soho1.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843 한류와 문구]</ref>
 
== 사건의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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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이동 ===
1983년 5월 5일 21시에 승객과 승무원들은 비행기에서 하기하고 춘천에서 1박을 한 후, 서울로 이동했다. 납치범들은 별도로 수용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승객과 승무원들을 일단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워커힐호텔]]에 묵게 하도록 조치한 후, 여의도와 [[자연농원]] 관광을 시켜 주었다. 승객들은 [[중국민용항공국|중국민항]]이 보낸 [[보잉 707]]을 타고 귀국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승객들에게 컬러 TV를 선물해 주는 등 한중관계개선의 지렛대 역할로 이 사건을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납치범 6명은 1년간의 구속 수감 후, 추방 형식으로 [[중화민국]]으로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였다.
 
===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