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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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llang|ja|三島 由紀夫}}, [[1925년]] [[1월 14일]] ~ [[1970년]] [[11월 25일]])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평론가]], 정치 운동가로 우익 민족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필명이고,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llang|ja|平岡 公威}})이다.
 
[[태평양 전쟁]] 패전 뒤의 일본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대표작으로 《가면의 고백》(원제: 仮面の告白), 《조소》(潮騒), 《금각사》(金閣寺), 《교가코의 집》(鏡子の家), 《우국》(憂国), 《풍요의 바다》(豊饒の海) 4부작 등이 있고, 희곡으로 《녹명관(로쿠메이칸)》(鹿鳴館), 《근대노가쿠집》(近代能樂集), 《사드 후작부인》(サド侯爵夫人) 등이 있다. 인공성(人工性)과 구축성(構築性)을 갖춘 [[허무주의]]적이고 [[탐미주의]]적인 작풍으로 평가받는다.
 
말년에 [[군국주의]]적 정치성향이 강해져 [[자위대]]에 체험입대하기도 하였다. 1968년 10월 5일 민병 조직 방패회(다테노카이)를 결성하였고, 1969년 2월 11일에 [[에토 고자부로]](江藤小三郞)의 자결에 자극받았으며, 1970년 11월 25일에 다테노카이 대원 네 명과 함께 자위대 이치가야(市ヶ谷) 주둔지 본성(현 일본 방위성)을 찾아가 동부방면총감을 감금하고 막료 여러 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사무실 앞의 발코니에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자는 연설을 하고는 5분 뒤에 [[할복자살]]하였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신우익(新右翼) 세력 발생에 영향을 주는 등 일본 국내의 정치운동에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