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하워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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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0년 헨리 8세와 캐서린 하워드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앤 불린]]이 처형되는 것을 알았음에도 왕비 자리를 수락한다. 캐서린은 왕비로 정식 즉위식을 올리지는 않았다. 중년의 헨리 8세는 어린 캐서린 하워드를 "가시 없는 장미"라고 부르며 유난히 총애했다. 왕은 그녀에게서 왕자를 얻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캐서린은 아버지뻘인 왕에게 경외어린 애정을 품었다.
 
캐서린은 [[클레페의 앤]]의 시녀 신분으로 궁정에 오기 전, 여러 남자친구를 두었는데 그 중 고위 관료로는 음악 교사 매녹스과매녹스와 물의를 빚었고, 서기관 프란시스 더햄과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공공연히 잠자리를 가진 전력이 있었다. 또 헨리 8세의 눈에 띄기 전에는 왕의 시종 토머스 컬페퍼를 사랑했다. 캐서린 하워드는 왕비가 된 후에도 컬페퍼에게 공공연히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매녹스를 궁중 음악가로 프란시스 더햄을 개인비서관으로 임명해 궁정으로 불러들였다.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친지들에게는 뇌물을 주었다.
 
1541년 11월 2일 헨리 8세는 캐서린 하워드의 과거에 대한 밀고를 받았다. 왕은 캐서린이 처녀가 아니었으며 간통을 하고 있다는 말을 처음에는 애써 믿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의 배신감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같은 해 11월 12일 프란시스 더햄과 토머스 컬페퍼는 끌려가 고문을 받았으며, 캐서린 하워드는 간통죄로 런던탑에 연금되어 심문을 받았다. 왕비의 간통은 반역으로 여겨지는 중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