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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9-02-10}}
 
'''권오설'''은 1897년 태어나 1930년 사망했다.
 
경북 안동 풍산읍 가일마을 출신이다. 풍산은 [[김재봉]], 이준태 등 조선공산당 활동가들의 고향이다.
 
권오설은 [[3.1운동이1운동]]이 일어난 1919년 끝자락에 귀향했다. 학업을 위해 대구와 경성을 떠돌던 그는 졸업장을 따지는 못했다. 가난때문이었다. 전남도청에 간신히 일자리를 구했다가 3.1운동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겨울에 출소했다.
 
귀향한 권오설은 독립에 모든것을 걸기위해 태어난사람처럼 변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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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태, 김남수와 풍산소작인회를 결성하고 화요회에 참여했다
 
1924년 조선노동총동맹 상임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조선공산당 산하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집행위원과 조직책으로 활동했다.
 
2차조선공산당 고려공청 책임비서를 맡아 6.10민중항쟁을 주도하다 체포돼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권오설은 1930년 서대문형무소에서[[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를 100일 앞두고 사망했다. 일제는 그의 무덤을 봉분조차없는 평장으로 할것을 강요했고 가족들의 입관도 불허했다. 일제의 통제아래 집안사람 몇명만 참석할수있었다고 한다. 참혹한고문으로 죽었음을 감추기 위해 철제관을 썼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78년동안 동네에 유령처럼 소문으로 떠돌던 이야기는 사실로 드러났다. 녹슬어 핏핓이 된 납땜을 한 철제관이 발견된것.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