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드디외 술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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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된 예시로는 [[백일천하]] 시기 당대 왕당파들의 풍자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을 두고 1815년 3월 20일 [[튀일리궁]]에 “니콜라” 부오나파르트가 도달했다고 묘사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나폴레옹 황제를 두고 “니콜라” 황제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 « Les monuments de l'Empire - L'Empire… par ses Monuments », 장 드 디외 술트 (1769-1804-1851), napoleon-monuments.eu (2011년 12월 1일).}}(Jean-de-Dieu Soult)는 [[1769년1770년]] [[3월 29일]] [[생타망술트|생타망라바스티드]](현 [[타른주|타른 주]] [[생타망술트]])에서 태어나 [[1851년]] [[11월 26일]] 사망한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04년 5월 19일 [[제국 원수]]에 임명된 술트는 [[아우스터리츠 전투]](1805)에서 결정적 기여를 하였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은 술트를 두고 “유럽 제일가는 책사”라고 평했다. 술트는 [[루이 니콜라 다부|다부]], [[장 란|란]], [[앙드레 마세나|마세나]], [[루이 가브리엘 쉬셰|쉬셰]]와 더불어 황제가 부재할 시에도 군대를 지휘할 역량이 있는 몇 안되는 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