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되돌려진 기여
메이 (토론 | 기여)
잔글 110.8.46.113(토론)의 편집을 메이의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65번째 줄:
|출생일 = {{출생일|1769|8|15}}
|출생지 = [[코르시카 공화국]] [[아작시오]]
|사망일 = 1819년{{사망일과 5월 5일 (50세)나이|1821|5|5|1769|8|15}}
|사망지 = [[세인트헬레나|영국령 세인트헬레나]] [[롱우드]]
|매장지 =
77번째 줄:
|종교 = [[로마 가톨릭]]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llang|fr|Napoléon Bonaparte}}, {{llang|co|Nabulione di Buonaparte}}, {{llang|it|Napoleone Bonaparte}}, <small>[[독일어]]:</small> Napoleon Bonaparte [[1769년]] [[8월 15일]] ~ [[1819년1821년]] [[5월 5일]])는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군인]]이자 [[1804년]]부터 [[1814년]], [[1815년]]까지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였다.
 
코르시카 출신의 하급귀족으로 시작해 [[프랑스 혁명]]의 혼란한 시대 속에서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통해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며 유럽의 모든 열강들을 굴복시키고 황제 나폴레옹 1세가 된 인물이다. [[샤를마뉴]] 이후 프랑스 최초의 황제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근대 유럽이 배출한 최고의 군사적 천재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가 남긴 나폴레옹 법전은 전 세계의 [[민법]] 관할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나폴레옹이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면서 법치주의, 능력주의, 시민 평등사상 등 혁명의 정신들이 온 유럽에 전파 되었다. 근대 유럽은 영국의 산업혁명이라는 경제적 혁명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정치적 혁명을 통해 탄생한 세계였으며 결국 이후 전 세계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근대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유럽화, 된 만큼 유럽 뿐 아니라 전 세계 역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182번째 줄:
 
== 사망 ==
나폴레옹은 특히 [[세인트헬레나섬]]의 총독인 [[허드슨 로|허드슨]]으로부터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그는 무례하게도 자부심 강한 나폴레옹에게 보나파르트 장군이라고 부르며 썩은 포도주를 따라주는 등 나폴레옹을 철저하게 조롱했다. 또, 나폴레옹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치의를 본국으로 귀국시켰다. 그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져 매일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1819년1821년]] [[5월 5일]], 오후 5시 49분에 세상을 떠났다. 암살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의 정식 사인은 [[위암]]이라고 발표되었다. 그의 유해는 [[1840년]] 5월에 영국의 동의를 얻어 프랑스에 반환되었으며, 현재 파리의 [[앵발리드]]에 안치되어 있다.
 
한편 나폴레옹의 사인은 독살이라는 견해가 제기되어 있으며<ref name=autogenerated1>↑ 세계를 속인 거짓말, 이종호/ 뜨인돌</ref> 나폴레옹의 모발에서 비소 중독자의 질환, 증상이 나타났다고 한다.<ref name=autogenerated1 />
228번째 줄:
[[분류: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분류:1769년 태어남]]
[[분류:1819년1821년 죽음]]
[[분류:프랑스인의 황제]]
[[분류:안도라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