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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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 미국 토목학회에서 꼽은 토목학적 의의를 서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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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의 채석장에서 채굴한 벽돌로 쌓은 축성 공사에는 다산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가 사용되었다.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에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화성은 군사적 방어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동양 성곽의 백미로 평가받는다.
 
관례적으로는 국가가 [[임금_(경제학)|임금]]을 전혀 지급할 필요가 없는 경우였지만, 성곽 건설에 [[병역|군역]]의 의무로 동원된 부역자들에게도 일반 건설 현장에서와 같은 적절한 임금을 나라에서 일반 노역자와 차등을 두지 않고 그대로 지급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suwon.go.kr/sw-www/sw-child/sw-child_01/sw-child_01_03/sw-child_01_03_06.jsp|제목=수원을아시나요|출판사=수원문화원|확인날짜=2021-01-0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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