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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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동학측 자료에서도 전봉준과 천우협(天佑俠)의 접촉을 확인해주고 있는데 『천도교 창건사』에 의하면 "일본인 다케다(武田範之) 등 15명이 금시계 1개와 마노(瑪瑙, 보석의 일종) 하나를 보내어 믿음을 보이고 면회를 청한 즉 전봉준이 거리낌 없이 이들을 면담하고 시국을 서로 논하였다<ref>한상일, 「동학과 일본 우익:천우협(天佑俠)과의 제휴에 관한 고찰</ref>'하여 전봉준과 천우협 측의 면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 기타 ===
 
=== 체격 ===
전봉준은 키가 152cm이며 이는 현재도 물론이거니와 당대 기준으로도 작은 체격이였다. 그래서 붙은 전봉준의 별명이 '''녹두장군(綠豆將軍)'''이였다.
 
=== 기타 ===
* [[1959년]] [[4월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전봉준을 소재로 한 액면가 2전 우표를 발행하였다.
*전봉준이 교수형에 처한 이후 백성들은 〈새야새야 파랑새야〉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 노래는 전봉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