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넨베르크 전투 (141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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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리투아니아는 유럽에 마지막으로 남은 비기독교 국가였다. 그들은 두 기독교 세력과 싸워야 했는데 [[폴란드 왕국|폴란드]]와 [[튜턴 기사단]]이었다. 튜튼 기사단과 리투아니아는 100여 년 동안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1385년 26세의 나이로 리투아니아의 대공이 된 [[브와디스와프 2세|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워]] 야기에우워(Władysław II Jagiełło)는 그들의 힘만으로는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폴란드와 동맹을 맺었다. 야기에우워는브와디스와프는 1386년 2월 세례를 받고 폴란드 왕국의 여왕 [[피아스트 왕조야드비가]]의 왕위계승자인 야드비가 공주와 결혼하여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같이 지배하는 [[야기에우워 왕조]]를 세웠다. 이에 튜턴 기사단은 야기에우워가 폴란드의 왕관을 위해 거짓으로 개종했다고 주장하고 계속 공격했다. 야기에우워는 사촌인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타스]](Vytautas)와 협정을 맺어 결속을 공고히 했다. 이때 리투아니아군은 1399년 보르스클라 강 전투에서 [[킵차크 한국]]에게 대패해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있었으므로, 동맹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1407년, 기사단장 콘라트가 죽었다. 그는 죽기 직전 그의 동생 울리히를 다음 기사단장으로 지명해선 안 된다고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울리히는 결국 기사단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409년 대군을 거느리고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요처를 공격했다. 이에 야기에우워는 바로 대응에 나서 튜튼 기사단의 공세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