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침례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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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개혁파 침례교회의 태동 ===
개혁파 침례교회의 기원은 일반 침례교회(General Batists)와 다른 경로를 가진다. 일반 침례교회가 재침례파라고 일컫는 급진적 종교개혁 한 분파인 메노파(Mennonite)와의 교감으로 존 스미스(John Smyth, 1554-1612)에 의해 세워진 반면 개혁파 침례교회는 대륙의 종교개혁 운동, 그 중에서도 칼빈의 제네바 개혁운동의 영향으로 세워진 특수 침례교회(Particular Baptists)가 출발이다.<ref> Tom Nettles, The Baptists: Key People Involved in Forming a Baptist Identity, vol. 1, Fearn, Ross-Shire, Scotland: Christian Focus, 2005, p. 111.</ref>
 
특수 침례교 기원에 대해서는 몇 학설이 있으나 1640년대 초 헨리 제이콥(Henry Jocob, 1563-1624)이 목양한 제일 회중교회 내에서 태동했다는 것이 정설이다.<ref>특수 침례교회의 기원에 대하여는 D. M. Lloyd-Jones, John Bunyan: Church Union, The 1978 Westminster Conference, 87~88.을 참조하라.</ref>
 
=== 침례파 청교도의 첫 신앙고백(1644) ===
청교도 그룹 안에 교회정치와 함께 세례의 개혁 목소리가 있었다. 그 시작은 런던 제이-엘-제이 교회(J-L-J church, Jacob-Lanthrop-Jessey)로 알려진 온건 분리파 제일회중교회(the first congregational church)에 있었다. 이 교회를 나온 성도들은 런던 남부를 중심으로 교회들을 세웠는데, 특수 침례교회(Particular Baptists)로 불렸고 1640년 중반 즈음에는 일곱 교회가 세워졌다.<ref> 조엘비키, 칼빈주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 지평서원, p.75.</ref>
 
일곱 특수 침례교회들은 1644년 첫 신앙고백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세상에 그들의 존재가 알려졌다. 신앙고백 표지에 "부당하게 재침례파로 오인된 일곱 교회의 신앙고백"(A CONFESSION OF FAITH of seven congregations or churches of Christ in London, which are commonly, but unjustly, called Anabaptists)이라는 글귀가 쓰여있다. 특수 침례교회들은 유아세례를 반대했다. 그리고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자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자의 세례"(Believer's Baptism) 입장 때문에 종종 재침례파로 오인되거나 동류의 입장을 가진 일반 침례교회로 여겨졌다. 일반 신자들은 특수 침례교회가 어떻게 일반 침례교회와 구분되는지를 잘 몰랐다. 특수 침례교회들은 이 모든 혼란을 종식시키고, 일반 침례교회와의 차이를 밝힘으로써 구별성을 나타내고,<ref> B.S. Poh, A Garden Enclosed: A historical study and evaluation of the form of church government practiced by the Particular Baptists in the 17th and 18th centuries, Good News Enterprise, 2013, p.4.</ref> 종교개혁 운동과 개혁신학과의 연대성을 알려 교회의 정통성을 확립할 목적으로 1644 신앙고백을 작성했다.<ref> 조엘비키, 칼빈주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 지평서원, p.75.</ref> 특수 침례교회의 첫 신앙고백은 발표된 년, 또는 지명에 따라 각각 "1644 신앙고백", "런던신앙고백(1644)"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 장로파 청교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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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파 청교도의 사보이 신앙고백(1658) ===
[[파일:Savoyconfession.gif|섬네일|왼쪽|x250px|사보이 신앙고백(1658) 표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작성에 참가한 7명의 독립파 청교도들은 적은 숫자였으나 영향력이 상당했다.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80)은 박식한 신학지식과 출중한 리더쉽으로 고백서 초안 작성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ref> 오덕교, 청교도 이야기, 이레서원, p.122-123.</ref> 제레마야 버로우스(Jeremiah Burroughs, 1600-1646)는 경건과 훌륭한 인품을 바탕으로 서로 간의 교회정치 불일치를 해소하는데 크게 활약했다.<ref> Joel Beeke and Randall J. Pederson, Meet the Puritans, RHB, 2006, p.119-120.</ref> 필립 네이(Philip Nye, 1595-1672)는 웨스트민스터 총회 회의 장면을 그린 존 R. 허버트의 그림에서 의장 윌리엄 트위스(wiliam Twisse, 1578-1646)를 마주보며 양심의 자유에 관해 발언하는 인물이다.<ref> http://www.bbc.co.uk/arts/yourpaintings/paintings/assertion-of-liberty-of-conscience-by-the-independence-of213923</ref>
 
1658년 10월 12일 독립파 청교도들은 사보이 궁에서 "사보이 신앙고백"(The Savoy Declaration)을 발표했다. 작성은 청교도의 황태자로 불리던 존 오웬(John Owen, 1616-1683)과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가한 토마스 굿윈이 주도했다. 내용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기반으로 했으나 교회정치 부분은 수정했다. 장로교회의 장로주의가 감독주의의 온건한 형태와 다르지 않다고 보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로의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 참가자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필립 네이(Philip Nye), 윌리엄 브릿지(William Bridge, 1600-1670), 조셉 카릴(Joseph Caryl), 윌리엄 그린힐(William Greenhill) 등이 사보이 신앙고백서 작성에 참여했고 존 하웨(John Howe)를 포함한 약 120여개의 교회들이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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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689confession.jpg|섬네일|왼쪽|x350px|제2차 런던신앙고백(1689) 표지]]
 
특수 침례교회 2세대들은 167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을 기초로 사보이 신앙고백(1658)을 참조하여 새 신앙고백을 작성했다.<ref> Erroll Hulse, Who are the Puritans?... and what do they teach?, Darlington: Evangelical Press, p.57.</ref> 당시 청교도들은 장로교회파, 독립교회파, 침례파 세 부류가 있었다. 그래서 세 신앙고백의 차이는 교회정치와 세례 부분에서만 한정되고<ref> Michael A. G. Haykin, Kiffin, Knollys and Keach: Rediscovering our English Baptist heritage (Leeds:Reformation Today Trust, 1996), p.62-63.</ref> 신학체계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ref> 조엘비키, 칼빈주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 지평서원, p.77.</ref> 초안 작성은 윌리엄 콜린스(William Collins)와 느헤마야 콕세(Nehemiah Coxe)가 맡았다.<ref> 조엘비키, 칼빈주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 지평서원, p.77.</ref> 하지만 재집권한 왕당파 정권과 국교회의 탄압으로 발표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1689년 관용령(Act of Toleration)이 내려지자 새 신앙고백이 공표되었다. 특수 침례교회 지도자들이 회의를 소집해 1689년 7월 3일부터 11일까지 런던에 모였다. 주요 안건은 1677년에 작성된 새 신앙고백의 채택이었다. 웨일즈를 포함한 잉글랜드 전 지역의 교회 대표들이 모여들었다. 이때 대표단을 보낸 교회가 무려 100여 개가 넘는다. 박해 속에서도 교세가 꾸준히 성장했다는 증거다. 특수 침례교회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작성한 장로교회, 그리고 사보이 신앙고백을 발표한 회중교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 신앙고백서를 자랑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