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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왕'''(新大王, [[89년]]~[[179년]], 재위: [[165년]]~[[179년]])은 [[고구려]]의 제8대 [[국왕]]이다.
[[재사|고재사]](고구려국 고추가)의 서자(庶子)인 그는 [[고구려 태조왕|태조왕]](太祖王)과 [[고구려 차대왕|차대왕]](次大王)의 이복 동생이지만 태조왕과는 터울이 42살까지 나므로 이복 동생이 아니라 태조왕의 아들<ref>진수, 《[[삼국지]](三國志)》, 3세기 / 신채호는 차대왕, 신대왕, 인고가 태조왕의 서자라고 주장했다.
[[신채호]]에 의하면 [[차대왕]], 신대왕, 인고(仁固) 3형제는 태조왕의 이복 동생이 아니라 서자라고 한다.<ref>신채호, 《조선상고사》, 종로서원, 1948.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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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계는 기록마다 서로 상이하며 [[삼국사기]] 내에서도 서로 다른 대목이 있어, 다소 불확실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대왕은 [[태조왕]]의 이복 동생이지만 [[후한서]]에 의하면 신대왕은 차대왕의 아들이라 한다. 또한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에 그의 아들 [[산상왕]]의 이름이 위궁이며 [[태조왕]]의 증손자라 하여 가계가 서로 맞지 않는다. 위궁을 그의 아들 [[산상왕]]이 아닌 손자 [[동천왕]]으로 비정한다 해도 [[태조왕]]과 그의 관계가 형제가 아닌 부자로 설정해야 맞게 된다. [[신채호]]는 신대왕을 [[태조왕]]의 서자로 보았다.
신대왕은 [[166년]], 좌·우보(左·右輔)를 폐지하고 국상제를 도입하여 명림답부를 임명하였으며 대사면령을 내리고 차대왕의 아들 추안(鄒安)을 양국군에 봉하는 등 정치적 안정을 꾀하였다. [[168년]]에 [[후한]](後漢)의 현도태수가 침공해 들어와 항복하였으며 [[169년]]에는 현도태수 [[공손도]](公孫度)를 도와 부산적(富山賊)을 토벌하였다.<ref>이 시기에는 실제 공손도가 요동에 세력을 잡기 이전으로, 이 기록은 오기로 보고 있다.
[[176년]]에 왕자 남무(男武)를 왕태자로 삼았으며 [[179년]] 음력 12월에 91세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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