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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한국 문화재관리국은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61번지에서 이견대의 옛 터를 찾아냈고 그 앞의 바다에 떠 있는 대왕암이 문무왕의 해중릉임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이곳은 대한민국 사적 제159호로 지정되었으며, [[1979년]] 옛 터로 알려진 자리에 건물이 복원되었다.
 
그러나 이 복원된 이견대가 실제 이견대 자리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의문을 제기한 것은 1969년 이견대 발굴 당시 신라오악조사단원으로 참여하였고 이견대의 위치 비정에 일조한 고(故) 황수영 박사였다. 황수영 박사는 2002년 4월 자신이 《불교신문》에 투고하고 있던 「불적일화」(佛跡逸話)라는 연재 기고를 통해, "일단 이견정의 위치를 발굴지로 비정하기는 하였으나 《삼국유사》 등의 문헌에 보이는 ‘축성(築成)’의 자취를 찾지 못한 것이 못내 개운치 못하였다."며, 그러던 중 [[1995년]] 가을께, 문무대왕릉 관리인인 김도진 씨로부터 현재는 없어졌으나 옛날에는 대본마을에서 감은사로 넘어 가는 길이 이 산으로 해서 나 있었다는 것이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곳은 예전에 최남주 선생이 말하던 산 위였고, 황수영은 대본초등학교(2010년 폐교, 현재 임실치즈농장체험장) 뒷산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1,300∼1,600여 m<sup>2</sup>(약 400∼500평)의 너른 대지와 그 삼면에 인공으로 축석된 자리에 부근에 신라 시대 기와 파편들, 커다란 민묘와 조선 시대에 세워진 석비 1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석비에는 '이견대(利見坮)'라는 글자가 보이기도 한 것을 황수영 본인이 직접 보았다는 것이다. 황수영은 자신의 비정이 틀렸음을 시인하며 알려진 이견대 자리는 신라 시대의 이견대가 아니라 조선 시대의 역원인 이견원(利見院)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덧붙였다.<ref>'경주 이견대 유감' 《불교신문》2002년 4월 30일자 「불적일화」 제12. </ref>
 
== 속악 이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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