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럼타오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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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프랑스 사료가 침묵을 지키며 잘 다루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정하기확인하기 힘들다. 프랑스의 공식 뉴스 통신사인에 아젱스 아바스(''Agence Havas'')는 시몽의 대대가 풀럼타오를 정찰하다가 사상자 몇 명을 냈다고 발표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건이 있었다. 주아브병 대대가 풀럼타오를 공격하다가 격퇴당한 것은 확실해 보이며, 격퇴는 수치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작전에 대한 가장 제대로 된 설명은 대대장 미뇨(Mignot) 대대의 주아브병 2연대 장교인 폴 생몽(Paul Sainmont)이 제공한 것이다. 그의 대대는 생몽의 대대와 함께 통킹에 동반했다.
[[파일:Tonkin Zouave officer.png|섬네일|left|프랑스 주아브병 장교, [[통킹]], 1885년 봄]]
{{인용문2|오늘 1대대, 주아브병 1연대가 방후옌 마을 근처 타인머이 지역에서 [[류융푸|유영복]]의 [[흑기군]]과 맞붙었다. 이 산적놈들이 랑선에서는 드 네그리에 대령에게, 뚜옌꽝에서는 [[브리에르 드 리즐]] 장군에게 쫒기다가 이 지점에 집결하기 위해 그곳에 무리지어 도착했다. 우리 동지들은 3월 23일 저녁 내내 격렬하게 싸웠다. 해가 진 후 성채의 꼭대기에서 이 장엄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흥호아 요새는 이웃 마을 두세 곳을 집어삼키고 있는 눈부신 불꽃에서 발산된 빛을 보았다. 그리고 작전이 상당히 넓은 전선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아브병들이 활기와 용기가 부족하지 않았지만, 밤이 되었고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질서정연하게 홍강 좌안에 있는 주둔지를 되찾았다. 극도의 살인적인 화재로 인해 방후옌의 요새화된 탑에 몇 차례 맹공을 가한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ref>Sainmont, 120–1</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