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시스 풀랑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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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6인조]]의 일원으로 [[파리 (도시)|파리]] 출신이며 어릴 적부터 [[모차르트]]와 [[클로드 드뷔시|드뷔시]]를 열렬히 사랑하였다고 한다. 초기 작품에서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스트라빈스키]]나 [[에리크 사티|사티]]의 영향도 엿보인다.
 
풀랑크는 부유한 공장주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가업을 이을 것으로 여겨져 음대에 진학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는 음악을 독학하다가,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네스]]의 가르침을 받는데 그는 풀랑크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그의 멘토가 되어준다. 풀랑크는 또한 [[에릭 사티]]와도 일면식이 있어 그의 후견 하에 젊은 프랑스 작곡가의 모임인 [[프랑스 6인조|6인조]]({{llang|fr|''Les Six''}})의 하나가 된다. 풀랑크의 초기작품들은 활발함과 그 특유의 불손함이 특징이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 좀 더 진중한 부분이 계발되는데, 1936년을 시작으로 종교음악들이 가벼운 음악들을 대체해나가는 모습에서 이러한 음악적 전환을 엿볼 수 있다.
 
풀랑크는 또한 훌륭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는데, 특히 성악 고문이었던 [[바리톤]] [[피에르 베르나크]], 소프라노 [[드니즈 뒤발]]과 구미를 돌며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이 때를 비롯해 1928년 이후로 많은 녹음을 남겼는데, [[축음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1세대 작곡가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