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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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이 [[이탈리아령 리비아]]에 진격에 진격을 가해 동맹국 이탈리아가 위험해지자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에르빈 롬멜]] 장군에게 5만 명의 군사를 주며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이탈리아를 도와 영국 등 [[연합군]]을 무찌르라는 명령을 받고 파병된다. 롬멜과 그 군사들은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파병되어 영국군을 [[이집트]]로 밀어붙이는 사이 맞설준비를 하는데 이때 북아프리카 주둔 영국군이 돌연 반격을 가해 900문의 대포를 일제히 쏘아 대면서 전투는 시작되었다
 
1942년 8월 ~ 10월 사이에 영국군의 증원군이 매일 [[엘 알라메인]]에 도착했고 병력 4만 1000명, 대포 800문과 1000대의1,000대의 전차가 보충됐고, 그 전차들 중에는 미국의 M4 셔먼 전차 300대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롬멜은 [[M4 셔먼]]와 성능이 비슷한 [[4호 전차]]를 불과 30대 밖에 보유하지 못했다. [[8월 13일]], 지난 7개월 동안 궤멸 직전의 타격을 받은 영국군 제8군 사령관으로 [[버나드 로 몽고메리]] 장군이 부임했다. 몽고메리는 전임자 [[클로드 오킨레크]]의 후퇴계획을 보고 고함을 버럭 질렀다. “그따위 계획은 있을 수 없다. 10m라도 후퇴할 때는 우리 병력이 반 이상 줄어들었을 때다.” 그리고 그는 패배 의식에 젖어 있는 부하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서두르지 않고 용의주도하게 준비해 나갔다. [[8월 30일]] 밤, 롬멜은 몽고메리의 제8군을 공격했고 작전의 성패는 속도에 달려 있다. 그러나 접근로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데 하룻밤을 소비했다. 가까스로 그곳을 돌파, 알람 엘 할파 능선을 공격할 때 불행히도 몽고메리의 매복에 걸리고 말았다. 몽고메리가 그곳에 미국제 그랜트 전차를 숨겨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군은 49대의 전차를 잃고 퇴각하고 말았다.
 
그 후 롬멜은 전투력의 열세·보급지원의 악화 등을 고려해 엘 알라메인을 고수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그리고 아프리카 군단의 방어 전면(全面) 60km 에 8km 의 폭으로 50만발의 지뢰를 매설, 소위 `악마의 뜰'을 만들었다. 영국군이 서쪽으로 진격하려면 이곳을 돌파하지 않고는 갈 수 없도록 돼 있었다. 그 당시 제8군과 아프리카 군단의 수치상 전투력 비는 2대 1이었다. 즉 병력은 19만 5000명 : 10만 4000명이었고 중형전차는 1029대 : 469대였다. 보급사정도 제8군은 원활했으나 아프리카 군단은 고초를 겪고 있었다. 독일군의 보급물자는 480km 떨어진 [[토브룩]], 960km 떨어진 [[벵가지]], 더 멀리는 1920km 떨어진 [[트리폴리 (리비아)|트리폴리]] 항구에 양륙한 다음 트럭을 이용해 사막길로 수송해야 했는데, 도중에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기도 했다. 롬멜이 필요로 하는 보급물자는 월 3만 톤이었으나 실제로 받은 것은 6,000 톤에 불과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엉뚱한 데서 발생했다. 영국군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공격을 감행하려 할 무렵 공교롭게도 롬멜이 발병(發病), 치료차 본국으로 가게 됐고 후임으로 아랫배가 처진 [[게오르크 시투메]] 대장이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