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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투타의 재능을 인정받고 입단하여 1959년 2월 스프링 캠프에서는 처음엔 불펜에서 투구 연습에 참가했지만 사다하루 자신이 “불펜에 들어와 보고 선배가 던진 공의 힘의 차이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나타났다. 심지어 코치진은 일목요연했을 것이다”라고 훗날 밝혔고 스프링 캠프 중에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과 전년도에 은퇴한 [[가와카미 데쓰하루]] 수석 코치, 그리고 [[나카오 히로시]] 투수 코치로부터 불려나가 미즈하라 감독으로부터 “사다하루, 내일부터 이제 던져도 좋다”라고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타격에 관해서는 연습에서도 선배에게 지지 않는 비거리가 나왔고, 전년도에 신인이면서 타격 2관왕 타이틀을 따낸 나가시마에게서도 약점이 적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ref>오 사다하루 저 《더 멀리! 나의 이력서》, p.61-62</ref>
 
고교 시절에는 고시엔 대회 우승 투수로서 유명한 존재였지만, 프로 입단 후 투수로서의 사다하루는 수뇌진이나 팀 선배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지만못했던 한편 타자로서의 평가는 보증할 정도였다. 당시 에이스였던 [[후지타 모토시]]는 사다하루의 인상에 대하여 “고시엔에서 활약하는 등 고교 시절에 너무 노력한 탓일까, 내가 보는 한 투수로서의 사다하루는 녹초가 돼있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전년도에 은퇴해 그 해부터 코치를 맡은 가와카미는 “뭐랄까, 투구 코스가 부드럽다. ‘어, 어!’라는게 없다. 그러나 배팅은 정말 대단했다”라고 말했다. 가와카미에 의하면 사다하루의 배팅은 자세부터 스윙까지 얼굴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신인이면서 이미 기본이 완성돼 있었다고 한다.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치바 시게루 (야구인)|치바 시게루]]는 연습 후에 사다하루와 온천에서 입욕했을 때 “사다하루의 체격에는 놀랐고, 상당히 좋은 체격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솟은 어깨로 대성공한 투수는 없을 뿐더러 투수로서는 힘들 것이다”라고 느껴 미즈하라에게 “투수로는 안 된다. 그렇지만 타자라면 가와카미의 절반은 친다”라고 야수 기용에 대한 의견을 냈다.
 
사다하루 자신은 투수로서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끼곤 있었다고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투수로서의 나는 고등학교 2년을 정점으로 해서 내려가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역시 야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투수를 동경하는 것으로 “야구는 뭐니뭐니해도 투수이다. 한 번이라도 경험한 자는 ‘생애 투수’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미련이 있었다”라고 말하면서 “한편으론 안심한 자신도 있었다”라고도 밝혔다.<ref>오 사다하루 저 《더 멀리! 나의 이력서》, p.61-62</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