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상륙 작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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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전투(統營 戰鬪)''', [[통영상륙작전]]이라고통영 상륙 작전이라고 불리는 이 전투는 1950년 6·25전쟁 중 해병대 [[김성은 (군인)|김성은]](金聖恩) 부대가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통영반도[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3034&cid=46617&categoryId=46617]에 최초로 적전상륙작전을 감행하여 통영을 탈환한 작전이다.<ref>{{웹 인용|url=https://terms.naver.com/entry.nhn?cid=46628&docId=530871&categoryId=46628|제목=통영상륙작전|언어=ko|확인날짜=2019-11-05}}</ref>
 
== 김성은 부대 ==
[[파일:김성은 국방장관.jpg|섬네일|105x105픽셀|김성은 장군]]
해병대는 1948년 여순 10.19사건 이후 상륙작전의 필요성에 따라 창설됐다. 이는 여순사건 진압 차 함대를 이끌고 출동한 신현준 중령이 “상륙군 없이 반란군을 완전 진압할 수 없다”는 보고를 받은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 그리하여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진해에서 380명의 규모로 창설되었고 사령관에 신현준 대령, 참모장에 [[김성은 (군인)|김성은]] 중령이 임명되었다. 토벌지휘관에는 김성은 중령이 임명되어 지리산에 근거한 진주일대의 공비를 소탕했다. 또 진주에서 제주도로 이동해 한라산 일대의 공비를 토벌하기도 하였다. 김성은의 작전으로 김성은 해병대 부대는 마산 진동리와 통영 전투에서 첫 승을 거두게 된다.<ref>공정식, 김성은 부대와 "귀신잡는 해병", 2009, 20쪽~21쪽</ref><ref>{{웹 인용|url=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m/view.do?ntt_writ_date=20070820&bbs_id=BBSMSTR_000000000212&parent_no=1|제목=국방일보 모바일|확인날짜=2019-11-11}}</ref>
 
== 전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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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
이 작전은 낙동강 방어선에 보급이 끊기지 않게 해주었고 또한 적 사살 469명, 포로 83명, [[따발총]] 128정, 아식소총 107정, 권총 13정, M1소총 3정, 기관단총 14정, 박격포 2문, 지프차 2대, 트럭 10대, 전화기 5대 등과 많은 포탄·수류탄 등을 빼앗는 대전과를 올렸으며, 아군은 15명이 전사하고 47명이 부상을 하였다.
 
== 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