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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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반정과 즉위: 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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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4월 11일]](광해군 15년 [[음력 3월 12일]]) 서인의 [[김류]]·[[이귀]]·[[이괄]]·[[최명길 (조선의 문신)|최명길]] 등이 일으킨 정변을 준비하고 그해 [[4월 12일]]([[음력 3월 13일]]) 새벽 군사를 이끌고 궁궐에 진입, 반정군에 힙입어 왕위에 올랐다. 즉위 직후 반정의 명분을 확립하여 정통성을 다지는 동시에 서인계를 중심으로 정부를 재구성하고 왕권을 안정시키는 작업을 폈다. 반정의 명분은 광해군 정권의 부도덕성과 실정에서 구했다.
 
반정의 명분인 [[광해군]]의 부도덕성과 실정의 근거자료가 인조시대 때 작성된 광해군 실록과 인조의 둘째 아들인 효종시대에효종 시대에 작성한 인조실록이 그 근거이므로 인조가 자신의 역모를 정당화 하기정당화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광해군의 부도덕성과 실정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농후할 수 있으나 광해군일기는 정초본과 중초본, 정초본은 역사적 사료 즉 사초이며 중초본은 사초를 엮어서 만든 완성본 이기완성본이기 때문에 그들이 광해군의 행적을 왜곡했더라면 당연히 사초를 남기지 않고 없에야없애야 마땅하므로 광해군일기는 그만큼 신뢰성이 높다. 한편 [[인조 반정]]의 주요 명분 중의 하나는 [[광해군]]의 [[인목왕후]] 폐모론이었다. 반정 후 형식적으로 [[인목왕후]]를 복귀시킨 뒤 그녀의 교서를 받아 즉위하는 형식을 취하였으나 즉위 이후 그녀에 대한 예우는 소홀하였다.
 
=== 재위기간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