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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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로제타 홀]] 교수는 수술이 있을 때마다, 평양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남편과 떨어져 서울에서 지내던 그녀를 불러 보조자 역할을 하게 했다. 그녀는 보조자 역을 싫어했지만, 로제타 홀 교수가 언청이를 수술하여 고쳐주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아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게 된다. 이 무렵 그녀는 로제타 홀의 주선으로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녀 나이 17세였다. 남편은 로제타 홀 교수의 남편이었던 홀 박사의 조수였던 박유산이다.
 
19세 때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서 1896년 20세 때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lang|en|Woman's Medical College of Baltimore}})<ref>현재의 존스홉킨스 대학교 의대와 합병을 위해 1910년 폐교되었음.</ref> 학생이 되었다. [[미국]] 기독교 선교 여의사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유학이 가능했다. 유학 중 남편은 볼티모어의 식당에서 일하며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였으나, 그녀의 졸업을 3주 앞두고 폐결핵으로폐결핵<ref>1950년대에 폐결핵 치료제를 개발하였고, 그 이전에는 시골에서 요양하는 정도가 치료의 전부였다.</ref>으로 사망한다.
 
1900년 박에스더는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서 여성병원인 [[보구녀관]]에서 일했다. 한국인 최초의 의사는 [[서재필]]이었으나, 실제로 의사로서 활동한 한국인 의사는 박에스더가 처음이다.<ref>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726</ref> 귀국 후 10개월 동안 진료한 환자가 3천 명이 넘었다. [[1910년]] [[4월 13일]] [[폐결핵]]으로 인해 34세 때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