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쿠스 막시무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30번째 줄:
기원전 31년에 일어난 화재로 목조 좌석들이 불탔지만,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집트 [[헬리오폴리스]]에서 거대한 석조 [[오벨리스크]]를 가져와 경기장 한복판에 설치했다. 이는 로마에 들어선 첫 오벨리스크였으며,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와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폼페이우스]] 연합군에 승리한 것을 상징적으로 기념한 것이었다. 그는 또한 좌석 열 사이에 거대한 규모의 신전을 지었는데, 그는 종종 가족들과 함께 이 곳에서 경기를 관람하곤 했다.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위치는 본디 홍수가 나기 쉬운 곳이었다. 이에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홍수를 막기 위해 추가적인
기원후 1세기에 경기장 중앙에 거대한 분수가 설치되었고, 이는 더 예술적인 장식들과 더 극적인 무대 장치들을 가능하게 했다. 이로 인해 여러 사원, 동상, 신전들이 들어섰다.
81년에 원로원은 [[티투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거대한 삼중 아치를 경기장의 끝 부분에 지었다. 이 아치는 이전의 정문을 대신하는 역할을 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경기장을 바로 내려다볼 수 있는 거대한 황궁을 팔라티노 언덕 바로 위에 지어 황궁에서 곧바로 경기를 내려다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는 아래에서는 그를 볼 수 없게 하고, 그는 모두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이와 같은 배치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화재가 발생하자, [[트라야누스]] 황제는 아예 경기장을 완전히 돌로 만들어버리기로 결정한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이때 지은 경기장의 골조는 이후 내내 이어졌다. 다만 [[카라칼라]] 황제가 출입구를 대대적으로 장식했다. 또한 좌석이 무너져 13,000명이 죽은 이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다시 한번 개보수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