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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기원'''(檀君紀元) 또는 '''단기'''(檀紀)는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인 [[단군]]의 [[고조선]] 건국 연대를 기준으로 하는 상징적인 기년이다.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기원전
전근대 한민족의 조상들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5000년간 지켜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자긍심의 표현인 것으로 평가되며, 현대에도 한민족의 상징적·신화적인 기년으로 인정되고 있다.<ref>이은경, 〈국사 교과서의 단군기원 서술에 대한 일고찰〉, 인하대학교, 2002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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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백문보]]가 단군이 치세를 시작했다고 여긴 연도는 현재의 단기 원년(기원전 2333년, 무진년)과 다르다. 백문보의 글을 모은 문집 《[[제왕운기|담암일집]]》 의 부록에 실린 편년(編年)에 따르면, 백문보는 이 상소를 공민왕 12년(1363, 계묘)에 올렸다. 따라서 백문보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1363년으로부터 3600년을 거슬러 헤아리면, 백문보가 생각한 단군 치세 원년은 기원전 2238년(계묘), 또는 기원전 2237년(갑진)이다.
기원전
{{인용문|이가 [[단군]](檀君)이며 국호(國號)는 [[고조선|조선]](朝鮮)이었는데, 바로 [[요 (군주)|당요]](唐堯) 무진년(戊辰年:기원전 2333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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